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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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후 농촌이 사라진다] ‘농촌 되살리기’ 핵심…‘청년 농부’에 확신 주는 것

(5회) 농촌형 일자리가 답이다 <끝>
11일 찾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마을은 청년들로 북적였다. 시골 마을인데도 마을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있었다. 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동구 밖까지 들렸다. 90가구 235명이 사는 이 마을의 청년 세대는 29가구다. 세 집 건너 한 집은 청년이 사는 셈이다.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에도 청년들의 바쁜 손놀림이 눈에 띄었다. 마을 전체가 생기가 돌았다. 30년 전만 해도 이 마을은 쓰러져 가는 빈집과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20년 전 친환경 오리 농업을 시작하면서 청년이 돌아오는 마을로 변신했다. 안정적인 고소득의 농촌형 일자리가 붕괴 위기의 농촌 마을을 살린 것이다. 우리나라 농촌 마을의 나아갈 방향을 보는 듯했다.

유기농법 견학 지난 9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환경농업마을을 견학 온 경기 평택시 청옥초등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환경농업교육관에서 유기농법과 건강한 식탁 만들기 강의를 듣고 있다.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형 일자리 모델’

문당마을에 활력이 넘치기 시작한 건 1993년 전국에서 최초로 벼농사 오리농법을 도입하면서다. 1년 뒤 19농가는 10만㎡의 논에 농약을 쓰지 않는 벼농사 무농약 재배 단체 인증을 받았다. 이는 오리농법이 전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됐다. 1998년엔 정부로부터 유기재배 단체 인증을 받았다. 당연히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은 일반 쌀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렸다. 일자리가 없어 도시로 떠났던 청년 몇 명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오리농법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마을 청년들을 중심으로 1999년 ‘문당마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마을 공동으로 1만㎡의 토지를 사들였다. 친환경 농법의 메카를 만들기 위해 마을 청년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2000년 12월 마을에 환경농업교육관을 세웠다. 마을 청년들은 쓰러진 빈집이나 폐가를 정비하고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양병이 교수팀의 지원을 받아 ‘21세기 문당리 발전 100년 계획’을 세웠다.

모내기 체험 서울 숭문고 학생 40여명이 지난 9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논에서 모내기하며 농촌을 배웠다. 숭문고의 모내기 체험은 3년째다.
100년 계획을 세운 지 18년째를 맞은 올해 문당마을은 친환경 농업의 메카가 됐다. 마을에는 농촌생활유물관을 비롯해 유기재배 벼 전문정미소, 우리쌀 막걸리 제조공장, 황토건강체험실, 물놀이 시설, 전통가옥, 생태에너지 체험장, 환경농업역사관, 풍력태양광발전시설, 생태습지가 들어섰다. 농가 소득을 올릴 자원이 집적화하면서 지속가능하고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 마을이 됐다. 해마다 3만명의 방문객이 문당마을의 지속 가능한 농촌자원을 둘러본다.

소득과 청년이 있는 문당마을을 이루는 데는 인근의 ‘풀무학교’가 큰 역할을 했다. 풀무학교는 1958년 문을 열었다. 60년째 농업인을 전문으로 육성하는 농업사관학교다. 이 마을 주민인 주형로(60)씨는 풀무학교 출신이다. 1977년 이 학교를 나온 주씨는 유기농법 벼 재배를 시작했다. 주씨는 문당마을영농조합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주 대표는 “지속가능한 농촌 마을을 위해서는 경험 있는 지역민과 청년이 함께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협업농장’이 답”이라고 말했다.

풀무학교 주변에는 이 학교를 나온 예비농부들이 산다. 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조합을 운영한다. 흙건축얼렁뚱땅조합을 비롯해 공공식당, 목공소, 유기농 떡 공장, 쌀빵을 만드는 쌀 가공공장, 술집 등 협동조합만 30여개다. 홍동면 상하중 마을에는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근무하는 의료생협까지 있다. 교육, 협동, 유기농업 등 홍동면의 지역공동체는 50여개에 이른다. 모두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결성되고 운영된다.

◆절체절명의 과제 청년 농부 육성

농촌의 붕괴를 막고 지속가능한 농촌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는 청년 농부 육성과 농촌형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실업률은 10%대에 육박하는데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청년은 없다. 청년들이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막대한 공공예산을 투입해 마을 단위 공공사업을 창출하고 있지만, 농촌을 되살리는 인구증가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기존 농부들의 소득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청년 농부와 청·장년 귀농인을 유입시키는 공공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산투입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농촌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다달이 일정 금액을 보조해주거나 창업의 경우 5000만원을 지원하고 교육과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한다. 이런 지원은 경제적 취약계층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되지만 지속 가능한 농업, 성장 가능한 경쟁력 있는 농식품산업 육성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현행 지원제도를 청년들이 자신의 일생을 걸 만큼 농촌과 농업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지원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48) 박사는 “청년 농업인들이 농식품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확신을 갖고 비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어떤 지원정책보다 우선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청년들이 농사와 마을을 배우며 농촌 문화를 창출하려면 돈벌이 외에도 농촌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의료 기반 확충 등 삶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글·사진 김정모 기자 race121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