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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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결혼 4개월 ‘초보 남편’의 단상

#1. 결혼 4개월차 ‘초보 남편’이다. 얼마 전 아내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있었다. 뭔가 거들고 싶은 생각에 다가가 “뭐 좀 도와줄까” 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럴 때는 ‘도와줄까’가 아니라 ‘같이 할까’라고 이야기하면 어떨까요”라며 더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순간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평소 가사가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심코 내뱉은 말 속에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니. “내가 해줄게”가 아니라 “내가 할게”가 당연한 말이라는 걸, 머리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김선영 산업부 기자
#2. 아내는 7살 어리다. 따져보니 아내보다 ‘2550일’을 더 살았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결혼 안 하더니, 어린 제수씨 만나려고 그런 거냐”고 웃으며 호들갑을 떤다. 평소 아내와는 ‘나이차’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시점’을 보면 ‘확’ 다가온다. 얼마 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 이야기를 신나게 한 적이 있다. 아내는 “우와, 그때 대단했구나”라며 “근데 오빠가 그때 ‘대학교 4학년’이었다고요? 난 중3이었는데”라며 신기해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울 때가 많다. 최근 아내와 가족계획을 세우면서, 아이 출산 후 ‘육아휴직’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혹시 오빠가 원한다면 육아휴직을 해보는 건 어때요?”라며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기들한테 정말 좋대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경제적인 게 문제라면 나도 벌게요”라고 미소를 보였다. 지난해 육아휴직에 참여한 남성이 1995년 제도 시행 이후 22년 만에 1만명을 돌파했다는데, 아내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3. MBC 파일럿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방송 후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정규로 편성됐다. 이 프로그램은 ‘언제나 사위는 백년손님, 며느리는 도리를 지켜야 하는 백년 일꾼’이라며 전지적 며느리 시점으로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방송에선 한 출연자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인사를 간 시댁에서 주방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때 남편은 거실에서 친지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장면을 보는데, 불현듯 저때 ‘나는 어떻게 했지’ 식은땀이 흘렀다. 아내는 “오빠는 그래도 음식도 옮겨주고, 설거지도 (결과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하겠다고 나서기는 했다”며 웃었다.

#4. 최근 뒤늦게 웹툰 ‘며느라기’를 다 봤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웹툰을 연재한 수신지 작가는 제목 며느라기의 뜻을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시기’라며 ‘시댁 식구에게 예쁨 받고 칭찬 받고 싶은 시기’라고 정의했다. 작가는 ‘민사린’이라는 여성이 ‘무구영’이라는 대학동기와 결혼해 맞벌이 가정을 꾸리며 겪는 일상을 그렸다. 작품에서 민사린은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가 되고자 시부모의 생신을 비롯해 결혼기념일까지 챙기며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갈수록 며느리 역할을 선택해야만 하는 압력에 시달린다. 이 과정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아내도 작가가 말하는 ‘며느라기’ 시기다. 그가 며느리 역할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늘 생각할 부분이다. 당장 부모님댁에 가면 거실 소파에 앉는 습관부터 바꿔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