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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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대구는 이미 변하고 있다

“대구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변합니다.”

2016년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부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바꿔야 한다”고 입이 부르트도록 호소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102명 중 45명을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로 뽑은 대구 민심의 변화를 보면서 문뜩 김 후보의 과거 유세현장이 떠올랐다. 27년 동안 대구에서 살면서 ‘대구가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2년 전 김 후보를 보면서 처음 가졌기 때문이다.

이창훈 사회2부 기자
그해 4월9일 토요일 저녁. 김 후보는 수성구 신매광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유세차에 올랐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김부겸’ 자체는 충분히 알려졌다. 그러나 ‘김부겸은 괜찮은데, 당 때문에 안 된다’라는 뿌리 깊은 지역주의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수성구 첨단의료지구에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서 더는 청년이 떠나지 않는 대구를 만들겠습니다. 대구 월드컵 스타디움과 라이온즈파크, 대구육상진흥센터를 묶어 스포츠 레저 문화단지로 만들겠습니다.” 김 후보는 마이크를 잡고 대구가 변하면 달라질 지역의 모습을 줄줄이 읊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찍어 달라는 호소가 아니라 바꿔 보겠다는 의지와 열망이 구체적인 공약에 담겼다. 길을 오가던 사람들도 멈춰서 연설을 듣는 바람에 유세차 주위에는 순식간에 수백명이 모였다. 연설이 끝나자 시민들은 ‘김부겸’을 외치며 환호했다.

같은 시간 신매광장에서 50여m 떨어진 큰길 가에는 김문수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유세하고 있었다. 수십명의 유세원을 대동한 김 후보는 “민주당이 종북세력인 통합진보당의 국회 입성을 도왔다. 야당 도와주면 또 종북세력이 국회에 들어올 것”이라며 핏대를 세웠다. 이어 “우리가 대통령 못 지키면 레임덕이 올 것이다. (저를 뽑아)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읍소했다. 지역을 바꾸겠다는 비전과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김 후보가 당선됐다면 박 전 대통령을 최순실로부터 지킬 수 있었을까.)

선거 결과는 유세현장의 반응과 같았다. 김부겸 후보는 62.3%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주의와 ‘야당은 종북’이라는 낡은 색깔론에 의지한 공포 마케팅은 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선거였다.

김부겸 의원의 당선 이후 2년 동안 대한민국과 대구의 정치지형은 360도 변했다. 2년 전 김부겸 의원의 당선이 대구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대구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그 사이 편을 가르는 지역주의와 공포를 조장하는 색깔론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유물이 됐다.

민주당이 대구에서 대약진한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관해 정작 대구의 유권자들은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생전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자를 뽑았다는 친구는 “공약을 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진짜 지역경제를 살려줄 수 있는 일꾼이면 당이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자유한국당이 2년 뒤 총선에서 똑같은 참패를 피하려면, 민주당이 제2, 제3의 김부겸을 당선시키려면 이런 대구의 변화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상 속도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창훈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