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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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토리] 500m까지 ‘킁킁’… 집념의 견공, 50명 몫 해낸다

“냄새나는 범죄 나에게 맡겨라”
‘인류의 친구.’

개는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물이다. 특유의 충성심과 용맹함으로 사냥과 집 지키기를 도맡아왔다. ‘견마지로’, ‘토사구팽’, ‘당구풍월’ 등 개와 관련된 고사성어가 유독 많은 것은 그만큼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개들은 반려동물로 사랑받는 것을 넘어 인명구조나 장애인 활동보조, 세관 검역, 마약 탐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중이다.

최근 경찰 수사에서 경찰견들의 기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탁월한 후각과 기동력을 살려 각종 범죄 현장에서 시신이나 폭발물을 찾는 ‘수사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달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한 전남 강진 여고생 실종사건에서 시신을 가장 먼저 찾은 것도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견이었다. 치매노인이나 실종 아동을 안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경찰견은 그 조상이 그랬듯 지금도 묵묵히 인간을 돕고 있다.
◆대테러→과학수사 범위 넓어져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처음 경찰견이 등장한 것은 박정희정부 시절인 1973년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20세기 초부터 경찰견 훈련시설을 운용한 것에 비하면 비교적 늦었다.

당시 정부는 경찰 수사를 보조하기 위해 일본에서 경찰견 13마리를 들여와 인분 등 냄새를 이용해 범인을 검거하거나 심야 순찰에 활용했다고 한다. 이후 전국 173개 경찰서에 경찰견을 2마리씩 보급하는 계획이 세워지기도 했으나 결국 시행되지 않았고, 1976년 해안 전경부대 등으로 관리 주체가 바뀐 이후 종적을 감추게 된다.

경찰견이 다시 무대에 오른 건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다. 당시 우리나라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올림픽을 잇따라 개최하게 되면서 경찰특공대가 창설됐고, 경찰은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본격적으로 경찰견(폭발물탐지견)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전체 경찰견의 64.3%가 경찰특공대·기동대 소속 폭발물탐지견인 점에서 보듯 대테러가 오랫동안 경찰견의 주된 임무로 여겨져 왔다.

폭발물 탐지에 주력하던 경찰견의 활동 반경이 대폭 넓어진 것은 2012년부터다. 경찰청은 선진국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실종자 수색 지원 등 수사 목적으로 경찰견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수사목적견 종합운영 계획’을 수립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서 이미 경찰견을 각종 수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경찰국 경비국에서 추진하던 경찰견 운용계획이 수사국 관할로 옮겨졌고 현재 과학수사계에서 수사견들을 담당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6월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운용하는 경찰견은 총 129마리다. 폭발물탐지견이 83마리로 가장 많고 수색견은 32마리다. 18마리는 경찰견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중 과학수사계에 소속된 경찰견은 17마리로 각 지방경찰청에 1∼2마리씩 산재해 있다. 경찰견들을 일대일로 담당하는 핸들러(지도수)는 총 117명(경찰 67명·의경 50명)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야산에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김영기 경사가 경찰 채취견 ‘나로’(마리노이즈)를 훈련시키고 있다.
남정탁 기자
◆‘공’에 대한 욕구가 기본 원리

실종자 수색에 활용되는 경찰견 한 마리가 일반적으로 사람 50명보다 수색 범위가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람의 방향이나 지형 등 영향을 많이 받지만 평지에선 최소 500m 넘는 곳까지 후각이 미친다고 한다. 특히 인적이 드물고 가파른 데다 벌레나 진드기가 많은 산악지대 수색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경찰견들은 어떤 원리로 임무를 수행하는 걸까. 핸들러들의 말을 종합하면 경찰견이 되기 위해선 지능이나 담력, 친화력, 운동 능력 등 여러 자질이 두루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물욕’이라고 한다. 임무 수행에 따른 보상 욕구를 말하는데, 보상으로는 주로 테니스공 크기의 고무공이 사용된다. 공(보상물)에 대한 욕구가 모자라면 아무리 다른 자질이 뛰어나도 경찰견으로는 낙제점이다.

예컨대 사체 수색견 훈련의 경우 부패한 시신과 성분이 같은 인공 시료로 만든 목표물을 발견하면 주변에 공을 보여주는 등 두 가지를 한데 묶어 ‘조건화’하는 식이다. 언뜻 경찰견들이 시신이나 폭발물을 찾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공’의 흔적을 더듬고 있는 셈이다. 군견이나 검역탐지견, 마약탐지견 등도 모두 같은 원리다. 공에 대한 욕구를 강화하다 보니 공을 삼켜 죽는 개도 더러 발생한다.

경찰견으로는 주로 독일 셰퍼드나 마리노이즈, 래브라도 레트리버가 쓰인다. 경찰견 수요가 생기면 핸들러들이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700만원 안팎의 예산으로 분양을 받아와 훈련시킨다. 수년 전부터는 뛰어난 능력을 보인 경찰견들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견’을 만드는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현재 경찰이 국립축산과학원과 수암생명공학연구원 등을 통해 공급받아 운용 중인 복제견은 총 68마리로 알려졌다. 
탁월한 능력으로 국내 첫 복제견의 부(父)견이 된 제주경찰청 소속 퀸(독일산 셰퍼드)은 지난 2016년 6월 경위 계급장을 달고 은퇴했다. 경찰견은 원래 계급이 없지만 2007년 자칫 미제로 남을 뻔했던 양지승 어린이 실종사건을 해결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았다. 경찰은 “제주경찰특공대 창설 멤버로 특별한 공적을 갖췄다”며 은퇴식까지 마련해줬다. 경찰견은 보통 10살 안팎이면 은퇴하는데 이후 경찰관이나 일반에 재분양된다.

경찰견으로 외래종이 주를 이루면서 토종 진돗개로 이를 대체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진돗개는 경찰견으로 키우기 쉽지 않다고 한다. 머리가 너무 좋아 공과 목표물을 한데 묶는 조건화가 어렵다. 또 첫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강해 핸들러가 바뀌면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 지난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경찰이 진돗개 4마리를 경찰견 육성 목적으로 분양받아 갔다가 결국 실패 선언을 한 것도 이 때문으로 알려졌다.
경찰 채취견 ‘나로’(마리노이즈).
◆“외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늘어나는 수요 탓에 활동 반경을 꾸준히 넓히고 있는 경찰견이지만 국내 육성 여건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란 평가가 대체적이다. 우선 130마리도 안 되는 숫자부터 1300마리 넘게 보유한 일본이나 1만6000개가 넘는 경찰견(K-9) 팀이 활동 중인 미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적인 훈련기관을 만들어 운용 중인 소방당국이나 검역본부, 군에 비해 훈련시설이나 육성 시스템이 열악하다.

최승열 코리아경찰견훈련소장은 “실종자 수색의 경우 조금만 시간을 아끼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부가 민간과 공조하는 시스템 등을 마련해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경찰견 수를 메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찰견 시스템이 잘 정비된 일본은 경찰이 직접 운용하는 ‘직할 경찰견’과 민간이 운용하는 ‘촉탁 경찰견’이 각각 활성화해 유기적으로 공조한다.

2009년부터 추진됐으나 환경훼손 우려, 일부 주민과의 마찰 등으로 차일피일 미뤄진 경찰견종합훈련센터가 지난 4월 가까스로 공사에 들어간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간 경찰특공대나 과학수사계 등 현장 부서 핸들러들이 경찰견 교육과 훈련, 운용까지 병행하는 점은 경찰견 육성에 한계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독일이나 프랑스, 미국 등 외국은 경찰견과 핸들러의 훈련 및 운용이 전문훈련소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견종합훈련센터가 생기면 더 우수한 경찰견과 핸들러들이 활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흐름을 보더라도 앞으로 각종 수사에서 경찰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