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딩동 달려갔더니/ 우리 아빠 회사 다녀오셨네 (엄마)/ 언제쯤 오실까 언제쯤 오실까 언제쯤 오실까/ 우리 택배 아저씨 (보고싶어요).”
송민섭 정치부 차장 |
호기롭게 웃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집에서 택배 아저씨보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허탈감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터에서 상사에게 혼나고 후배에게 치여도 집안에선 “아빠 최고”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내심 일용할 양식을 버느라 밖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매일 늦는다고, 쉬는 날에는 잠만 잔다고 툴툴대는 가족이 서운했다.
#2. 어느 덧 중년=그제는 대학 때 같은 동아리였던 사람들이 용산의 한 고깃집에서 뭉쳤다. 시끌벅적하게 서로의 근황을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20여년 전 함께 했던 그 시절을 반추했다. 술잔이 십여 순배 돌았을까. 자식 교육 등 집안 이야기와 노안, 흰머리, 지루성피부염 등 40대 중반 남성들의 장탄식이 이어졌다.
분명 불콰해진 낯을 식히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골프 이야기가 한창인데 금융기관 이사로 있는 선배가 무심한 표정으로 “요즘 늙음과 싸우고 있다”고 내뱉는다. 지지리 말을 안 듣는 중학생 딸을, 스펙은 훌륭한데 간혹 뒷목 잡게 만드는 젊은 직원들을 이해하려 부단히 애쓴다 했다. 여기저기서 “그게 바로 꼰대 짓”이라고 퉁을 놓으면서도 공감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3. 마음만은 청춘=그때 아버지 나이가 오십 정도였을 것 같다. 외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느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막내아들과 나란히 누운 당신은 며칠 전 서울에서 겪은 황망한 일을 전했다. 버스를 탔는데 젊은 아가씨가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며 일어서더란다. 그러면서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아직 너처럼 이팔청춘인데 말이야”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당시엔 우스갯소리로 웃어 넘겼다. 하지만 나 자신이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돼가다 보니 당신이 그 말을 꺼낸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하루가 다른 요즘이지만 마음만은 20대 막바지 다짐처럼 ‘친구 같은 아빠’ ‘실력 있는 선배(후배)’ ‘늘 깨어있는 기자’로 통하고 싶다.
#4. 이제야 낮 12시=동아리모임 다음날 숙취로 몸은 부대끼는데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모두들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은 아닌 것 같다. 문득 대학 시절의 패기와 열정을 떠올렸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일이 많아”, “나이가 몇 개인데”, “요즘 너무 힘들다”면서 나 자신의 무딤과 타성과 게으름을 감추려 했던 것은 아닌지 싶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2.4세라고 한다. 하루로 따지면 이제 겨우 낮 12시다. 말 그대로 ‘생애전환기’다. 앞날이 창창하다. ‘마음은 청춘’이라고 위안만 할 게 아니라 앞으로 열혈청년의 마음가짐으로 즐겁게, 열심히 살자고 다짐을 해본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시대, 물론 그 출발점은 일의 성취와 삶의 행복일 것이다.
송민섭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