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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개헌 능사 아냐… 진짜 중요한 건 법을 지키는 일"

유용태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개헌논의, 정치권 혼란·대립 키워/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 게 좋을 듯/정치의 공통된 목표는 ‘국리민복’/여야 화합하며 국민 행복 위해야/北과의 관계, 핵문제 선결이 필수/상호신뢰 속에 공존·통일 논의를
“(위정자들이) 자꾸 개헌 타령을 하는데, 헌법이 시원찮아서 그동안 바뀌었나. 헌법 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다.” 

유용태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은 제헌 70주년에 앞서 지난 13일 여의도 헌정회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랑받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공부하고 대중 속에서 파묻혀 야단도 맞으며 유권자와 함께 어울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유용태(80)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은 제헌 70주년을 맞아 개헌보다는 헌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와 준법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지난 13일 여의도 헌정회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헌 국회의원들이 다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이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때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며 “사회와 환경,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헌법은 수정할 수 있다. 그동안 9차례 개헌을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개헌은 능사가 아니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유 회장은 “헌법 개정 문제가 정치권에서 한동안 논의되다가 흐지부지됐다”며 “정치권의 혼란과 대립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헌이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회장은 “정치의 기본 목표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며 “국민이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일이 정치다. 정치인은 국민이 아픈 데 없는지 늘 살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염려하고 있다”며 “여야는 마치 원수지간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이 추구하는 목표는 같으나 수단과 방법이 서로 달라 여야가 존재하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자신이 하는 일은 원칙이며 선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화합이 잘 안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여야는 정당을 달리해도 동지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너무 각박하다”며 “정치권이 서로 화합을 못하면서 국민통합을 호소하면 그것이 국민에게 먹혀 들겠느냐”고 화합을 솔선수범할 것을 정치권에 당부했다.

유 회장은 “여야는 협상을 하며 명분과 실리를 나누어 갖는 등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어느 한쪽이 명분과 실리를 다 차지하면 안 된다”며 ‘나눔의 정치’를 설파했다. 이어 “정치권에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라며 “치열하게 토론을 하되 합의를 도출하는 아량과 양보가 필요하다”고 ‘협치’를 주문했다.

유 회장은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북핵 문제가 선결되고 그 바탕에서 남북한 상호 교류, 남북경협을 하는 것이 순서”라며 “핵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남북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북핵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남북 공존, 통일을 거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실행에 옮기면 그 이상으로 바랄 것이 없지만 핵보유국가로 남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우리도 살아 남기 위해서는 도리 없이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이 핵개발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전략핵무기를 재도입해야 한다”며 “이는 북한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북한이 힘의 균형을 유지할 때 전쟁을 억제하고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 회장은 “남북한 관계 개선은 상호 신뢰 속에 진행해야 하며 동족이라고 해서 선의로만 생각해 너무 흥분할 필요는 없다”며 “남북한 추진 속도와 북한의 태도를 보며 행보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 전 세계의 이목과 관심이 쏠렸는데 우리는 미국이 달라지는 모습을 예의주시하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미·북 정상회담은 남북한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자세전환을 의미하며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청년고용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했다. 그는 “근로자에 대한 임금상승은 좋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파급되는 현상들을 예측해야 한다”며 “임금과 고용구조는 이론과 현장이 안 맞는 경우가 있으므로 노사정이 모여 심도 있는 사전준비와 연구, 대책을 마련하는 등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고용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에서부터 추진했다”며 “일자리 상황판은 청와대보다는 기획재정부나 고용노동부에 설치해 현황을 파악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고용은 기업이 하며 정치는 일자리를 못 만든다”며 “공약 이행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야겠지만 한계가 있다. (정치권은) 기업이 재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 회장은 “돈만 있다고 해서 기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인이 신바람이 나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