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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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플라스틱의 역습… '일상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쓰레기로 몸살 앓는 지구/60개國서 일회용품과 전쟁 / 생명 위협하는 플라스틱 / 매년 폐기물 1270만t 바다 버려져 / 플라스틱 삼키고 죽는 생물들 급증 / 산호 등도 고사… 해양 생태계 신음 / 토양·대기 오염시켜 인간도 '적신호'
“암 발생 가능성 증가나 정자 수 감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및 자폐증 증가 등과 관련이 있다.” 미국 프레도니아 뉴욕주립대 미세플라스틱 전문 연구원 세리 메이슨 교수는 “이런 증상들이 환경 속 합성화합물 존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미세플라스틱은 이런 합성화합물이 인체 내로 유입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크기 5㎜ 미만의 작은 플라스틱을 말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해양 생태계는 물론이고 토양과 지하수, 공기까지 오염시켜 인간의 건강을 직접 위협한다는 연구결과는 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증가가 우려를 자아내는 이유는 실생활과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메이슨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생수에 함유된 미세플라스틱에 대해 연구했으며 지난 3월 “생수들이 플라스틱에 광범하게 오염됐다. 생산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에비앙, 산펠레그리노, 네슬레퓨어라이프, 아쿠아피나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수는 물론, 전체 조사 대상 생수 250개 가운데 93%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양이나 토양뿐만 아니라 대기 중에서도 검출된다. 크기가 수십 나노미터(㎚·10억분의 1m)에 불과한 것도 있어 호흡을 통해 순환기 계통에 흡수돼 장기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미세플라스틱은 생수, 음료수 등의 포장용기인 페트(PET)병에서 80% 이상 생겨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산업용 청소용품이나 합성섬유, 타이어 등 전방위에서 활용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마이크로베드(Microbeads)는 각질 제거와 세정 효과가 높아 얼굴 세정제, 샤워젤, 치약 등에 사용된다. 그동안 생활 편의를 위해 사용된 뒤 무차별적으로 버려진 플라스틱이 결국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플라스틱에 몸살 앓는 세계

세계 최대의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국이던 중국은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해부터 플라스틱 폐기물의 수입을 엄격하게 규제해왔다. 갈 곳 잃은 세계의 플라스틱 폐기물은 이제 동남아시아 국가로 향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베트남의 경우 2016년 34만t에서 지난해 55만t으로 폐플라스틱 수입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말레이시아는 29만t에서 45만t으로, 인도네시아는 12만t에서 20만t으로 늘어났다.

수입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일부 재활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각·매립되거나 바다에 투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세계적으로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480만∼1270만t에 이른다. 이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태국 등 5개국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투기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달 태국에서는 바다거북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잔뜩 삼켜 죽는 일이 벌어졌다. 동부 짠타부리주의 해변에 떠밀려온 녹색 거북의 배 속에는 플라스틱, 고무밴드, 풍선 조각 등이 가득했다. 태국 해양해변자원조사개발센터의 수의사인 위라뽕 라오베치프라시트는 과거에는 해변에 떠밀려온 거북의 약 10%가 플라스틱을 삼켰거나 해양쓰레기 접촉으로 감염됐지만, 올해는 이 비중이 50% 정도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해양 생물들의 서식처이자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산호도 플라스틱 쓰레기에 신음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 졸리 램 박사 등 연구팀은 111억 가지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시아·태평양 바닷속 산호 군락지의 3분의 1을 뒤덮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산호들을 죽이는 여러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은 20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3억3000만t 정도가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양은 2050년까지 3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영국 정부의 과학청(Government Office for Science)은 지난 3월 발간한 ‘바다미래통찰’ 보고서를 통해 해양에 누적된 플라스틱 규모가 2015년 5000만t에서 2025년 1억5000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플라스틱 쓰레기에 뒤덮인 고래 조형물 앞에서 플라스틱 사용 금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마=EPA연합뉴스
◆세계는 지금 플라스틱과 전쟁 중

플라스틱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지구의 생존이 위협받자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가 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유엔은 올해 ‘세계 환경의 날’(매해 6월5일)의 주제를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의 탈출’로 정했다. 유엔은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플라스틱 제품의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 일회용 비닐봉지나 용기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이에 과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미 이 같은 조치를 시행 중이거나 시행 예정인 국가들도 많다. 보고서에 따르면 60개국 이상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금지하거나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30%의 국가에서 규제 부과 후 첫 1년 내에 비닐봉지 소비가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은 지난 1월부터 화장품 등에 들어가는 미세플라스틱인 마이크로베드 사용 금지에 들어갔다. 하반기부터는 마이크로베드가 사용된 제품 판매 자체를 금지할 예정이다. 또한 연간 85억개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는 전체 플라스틱 쓰레기의 4% 정도를 차지하지만 해양 생물의 호흡기에 박히는 사례 등이 보고되면서 해양 파괴의 주범으로 꼽힌다.
 
캐나다 밴쿠버 시의회는 내년 6월부터 면허를 가진 모든 요식업소 등에서 음료용 빨대와 스티로폼 컵 및 포장 용기, 비닐백 등 일회용 플라스틱류 제품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 5월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시는 세계 최초로 204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완전히 없앨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도 지난 5월 해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플라스틱 면봉이나 빨대, 풍선 막대 등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에는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플라스틱병을 줄이기 위해 ‘믿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 공급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안을 마련했다.
스타벅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기로 했다. 미국 남성이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를 빨대 없이 마시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다국적 기업의 동참…획기적 기술 개발 이어져

범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플라스틱과의 전쟁은 다국적 기업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유명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기로 했다. 스타벅스의 본사가 있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는 이에 앞서 플라스틱 식기류와 빨대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타벅스는 앞으로 생분해성 물질로 만든 빨대를 사용하거나 빨대 없이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특별하게 디자인된 음료 뚜껑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맥도날드와 KFC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확산하는 추세다.

영국의 주요 슈퍼마켓들은 2025년까지 불필요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근절하기로 선언했다. 이에 네슬레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즈아이 등이 동참해 포장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40여개의 플라스틱 포장재 제조업체들은 재사용이 가능한 재질이나 7년 이내 썩는 재질로만 플라스틱 포장재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획기적인 기술 개발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콜로라도주립대학 화학과 유진 첸 교수 등 미국 과학자들은 지난 4월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를 통해 무한정 재활용할 수 있고, 내구성도 뒤지지 않는 플라스틱 개발에 진전을 이뤘다고 발표했다. 석유 제품으로 만드는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이 플라스틱은 원래의 작은 분자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 재활용이 무한정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을 먹는 효소도 발견됐다. 영국 포츠머스대 존 맥기헌 교수가 이끄는 국제과학 연구팀은 지난 4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이 같은 성과를 발표했다. 플라스틱이 완전히 분해되려면 수십년에서 수백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이 효소는 단 며칠 만에 분해 작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효소를 활용하면 원제품과 거의 똑같은 투명한 플라스틱을 다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분해 결과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효소 생산 비용 및 규모, 분해 능력 등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