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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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사이버 성폭력 만연… 온라인 유통 강력 규제해야”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 리벤지포르노 ‘문란한 여성’ 낙인 / 주변서 도움 못 받는 경우 많아 / 정부 화장실 점검, 미봉책 불과 / ‘몰카’ 인터넷 유통 절이 핵심 / 여성집회 일부 극단 표현 부적절 / 분노 원인 성찰… 해소 노력해야
‘리벤지포르노’는 일반인에겐 다소 낯선 용어일 수 있다. 헤어진 옛 연인이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악의적으로 유포한 성관계 동영상을 이렇게 부른다. 피해자는 아무래도 여성인 경우가 많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리벤지포르노를 비롯한 각종 불법촬영 사건 피해자를 돕고자 지난해 출범했다. 현재 인턴 2명을 포함해 20∼30대 여성 직원 9명이 활동 중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1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몰래카메라 등 불법촬영물의 온라인 유통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사이버 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원 기자
서승희(28)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불법촬영물 유통 차단에 앞장섰다. 2016년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들 사이에 악명이 자자했던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을 기어이 폐쇄시켰다.

“사이버 성폭력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오프라인 성폭력과 달리 피해자들이 상담을 요청할 때조차 사이버 성폭력은 온라인상에서 계속 진행 중인 거죠.”

19일 만난 서 대표는 “리벤지포르노는 성관계 동영상을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문란한 여성’이란 낙인이 찍혀 가족 등 주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이 센터가 지난해 5∼12월 실시한 피해자 상담 206건 중 절반가량인 100건이 리벤지포르노처럼 상대방 동의를 얻지 않은 성적 촬영물을 소셜미디어나 포르노 사이트에 유포한 데 따른 피해였다.

“사이버성폭력은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합니다. 그 공간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시장이 형성되지 않도록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상 성폭력과 달리 피해 현장에 정부가 개입할 유일한 성폭력인 거죠.”
사이버 성폭력 문제가 부각되자 최근 정부는 불법촬영물 삭제를 지원하고 그 비용을 가해자가 부담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발표한 ‘화장실 불법촬영 범죄 근절 특별대책’은 전국 공중화장실 5만여 곳을 상시 점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 대표는 “‘야동’의 온라인상 유통을 근절하지 않은 채 공중화장실이나 점검한다는 건 주변적 대책”이라며 “웹하드 등에서 야동이 유통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핵심인데 정부는 아직 웹하드 사업자들한테 ‘자발적 협조’를 요구하는 정도”라고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다만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포르노 사이트와 텀블러 등 소셜미디어는 정부도 어떻게 손을 대기가 힘들다. 이 센터는 미국과 독일, 호주 등에 있는 비정부기구(NGO)와 협약을 맺고 불법촬영물 피해자 지원을 위한 국제연대 구축에 나섰다. 특히 미국 사이버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인 ‘사이버 시민권리 구상’(CCRI)과 연대해 미국 국내법 개정도 추진하는 중이다.

“불법 포르노 사이트의 90%가량이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어요. 한국 경찰이 유포자를 추적해 처벌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미국 시민단체와 연계해 불법촬영물을 유통하는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미국 연방법에 도입하려는 겁니다.”

서 대표는 요즘 서울 혜화역 부근에서 2주일마다 열리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에서 불거진 논란에도 관심을 보였다. ‘혜화역 집회’는 주최 측 추산 누적인원이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자살을 뜻하는 ‘재기’란 구호를 외친 점 때문에 비난이 일었다. 이외에도 집회에서 표출되는 과도한 혐오 표현으로 ‘집회가 혐오 범죄를 유발하는 것 아니냐’는 사회적 반감이 커지고 있다.

서 대표는 혜화역 집회에 대해 “3년 전만 해도 전혀 없었던 사이버 성폭력 논의가 지금처럼 대중적 파급력을 일으킨 것은 이들이 분노와 함께 유희의 방식으로 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일단 긍정적 측면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바꾼다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잘한 행동이 아니다”며 “논란이 된 일부 표현이 모든 여성을 대표하지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의 근본 원인을 성찰해 문제를 고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함을 강조했다.

“여성들이 왜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지 고민해야 해요. 공중화장실 갈 때, 남자친구를 만나고 지하철을 탈 때 등 일상에서 사이버 성폭력 위협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게끔 정부가 나서 현실을 개선해야 합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