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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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창업 적령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황무지’를 T S 엘리엇이 발표한 것은 1922년이다. 그는 그 후 시인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지냈을까. 그렇지 않다. 런던은행에서 25년까지 일을 했고 그 후엔 출판사에 다녔다. 꿈을 좇아 생업을 버리는 모험은 그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시인은 그렇다 치고 기업가는 어떨까. 위험 회피에 신경을 쓴 불멸의 기업가가 의외로 많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대표적이다. 그는 15세 때 기계공이 됐지만 창업은 40세 때 했다. 그 전엔 에디슨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경험을 쌓았다. ‘나이키’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도 본업인 회계사 업무를 한동안 접지 않았다. 이런 사례가 부지기수다.

“창업할 때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게 나은가, 아니면 그만두는 게 나은가”라는 질문에 답한 실증 연구가 있다. 기존 직장을 다닌 창업가의 실패 확률이 훨씬 낮다고 한다. 기업가로 번역되는 영어 ‘Entrepreneur’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란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위험 감수가 능사는 아닌 것이다.

신생 벤처기업인 ‘스타트업’은 미래가 불확실하다. 성장을 계속해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되면 호칭이 바뀐다. ‘유니콘’으로. 뿔 하나 달린 상상의 동물이다. 기업 가치가 1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하면? 그때는 ‘데카콘’이다. 뿔이 10개 달린 상상의 동물이다. 그만큼 희귀하다.

유니콘도, 데카콘도 스타트업에서 출발한다. 과연 몇 살에 창업해야 성공 가능성이 클까. 45세라고 한다. 적어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의 최근 결론은 그렇다. 연구진은 ‘3년 이상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포드, 나이트 사례를 되새기게 한다.

그런데, 일자리 절벽에 직면한 우리 청년들은 어찌해야 하는 건가. 통계청에 따르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청년 중 단순노무직에 뛰어드는 이들이 지난 5월 기준으로 25만명을 웃돌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경험을 단순노무직에서, 혹은 무직에서 쌓을 수 있을까. 45세까지는 대체 무엇을 하나. 우리 청년들에겐 1년 12개월이 모두 잔인한 달이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이승현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