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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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오지랖 정부

우리나라 여행수지 적자가 2010년 84억달러에서 2017년 172억달러로 2배 이상 늘었다. 국내 여행에서 쓰는 돈보다 해외여행에서 쓰는 돈이 더 많은 결과다. 여행수지 적자를 줄이려면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고, 한국인은 외국 대신 국내 여행에 돈을 써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내국인의 해외여행 소비를 국내로 10%만 돌려도 2조5000억원의 부가가치와 7만3000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요즘 TV를 틀면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연예인으로도 모자라 가족들까지 동원해 그들이 외국에서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시시콜콜 보여준다. “방송에서 저런 것까지 보여 주어야 하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크로아티아, 체코, 헝가리 등으로 늘어난 것도 봇물처럼 쏟아지는 여행 예능 방송의 영향이다.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에 갑자기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면 십중팔구 방송 프로그램 때문이다.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못마땅해 방송 규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지 말란 보장도 없다. 물론 그런 짓은 무지막지한 독재국가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코미디다.

여행 방송 못지않게 먹는 방송 ‘먹방’도 홍수를 이룬다. 먹방의 위력 또한 대단하다. 걸그룹 멤버가 대낮에 홀로 곱창구이집에서 맛있게 곱창을 먹는 모습이 방송된 뒤 전국에서 곱창대란이 벌어졌다. 방송에 등장한 메뉴는 붐을 일으키고 방송에 소개된 식당은 손님이 줄을 선다. 그럴수록 건강한 식(食) 문화를 걱정하며 방송사의 자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약물의 오남용을 피해야 하듯이 음식의 오남용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비만관리 종합대책’의 일부 내용이 ‘먹방 규제’ 논란에 휩싸였다. “음주행태 개선을 위한 음주 가이드라인, 폭식조장 미디어(TV, 인터넷방송 등)·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는 대목이 빌미가 됐다. 정부는 “방송 규제가 아니다”라고 펄쩍 뛰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