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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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휴가 분산

서울 여의도에서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일대 계곡까지는 90㎞ 남짓. 몇 해 전 8월 초 주말에 여의도 집에서 가평 계곡으로 당일치기 물놀이 여행을 떠났다. 아침 먹고 출발했는데, 저녁이 다 되어서야 계곡에 도착했다. 무려 9시간이 걸렸다. 너무 늦게 도착해 당일치기 여행은 1박2일이 되어 버렸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허름한 민박집 방 하나를 겨우 구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어깨 근육이 뭉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국토교통부가 여름 휴가철 교통수요를 분석한 결과, 7월 말∼8월 초(7월 30일∼8월 3일)에 전체 휴가객의 40.8%가 집중됐다. 평상시에 비해 이동인구의 47.2%가 증가한다는 전망이다. 또 이 기간에 하루 평균 483만명, 누적 인원 9180만명이 이동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6%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늘부터 내달 3일까지 여름휴가를 떠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평균 15일 정도의 연차 휴가를 절반인 7, 8일 정도(근로자 휴가 실태조사, 2017 산업연구원)만 사용하고 있다. 이 휴가를 일제히 7월 말, 8월 초라는 한정된 기간에 쓰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이렇게 휴가가 집중되니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 고속도로는 차량 정체로 몸살을 앓고 피서지는 인파로 넘쳐나고, 바가지 상혼이 기승을 부린다. 북새통과 교통체증을 견뎌야 하는 휴가는 고행일 뿐이다.

그래서 휴가 분산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중반 휴가분산제 논의가 시작됐으나, 아직도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은 협력업체와 함께 쉬지 않으면 제품 생산에 지장을 받는다며 7말8초 휴가를 고수한다. 8월 초에 몰린 학원 방학도 변수다. 한여름에 집중되는 아이들 방학도 또 다른 이유다. 기업들이 나서서 휴가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자녀들의 방학 분산과 부모들의 연차 분산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연차를 자유롭게 쓰게 하는 것도 휴가 분산에 도움이 된다. 여름 휴가를 분산하려면 휴가 문화부터 바꿔야 하는 셈이다. 내년부터 대통령 휴가도 7말8초를 피하면 어떨까 싶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