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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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진먼다오의 통수(通水)

진먼다오(金門島)는 대만의 최전방 섬이다. 중국 샤먼(廈門)과의 거리가 2㎞다.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근거지를 옮길 때 진먼을 제1 방어기지로 삼았다. 인민해방군 도해(渡海)작전을 저지할 수 있는 군사요충지다. 섬 전체가 군사요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인민해방군 제3야전군 예하 제10병단이 진먼다오 상륙작전을 펼쳤지만 참패했다. 사흘간 9000여명 모두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다. 증원 병력을 보낼 배가 없었다. 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소가 펴낸 ‘중국인민해방군의 80년’은 “도해작전의 특징과 어려움에 대한 예측이 충분치 않았고 전투 방법도 엄밀함을 결여했다”며 “인민해방군이 입은 중대한 손실로 심각한 교훈을 주었다”고 했다. 대만을 점령하려면 해군·공군 강화가 필수 과제임을 절감했다. 이듬해 6·25전쟁 발발을 계기로 대만 해방을 훗날의 과제로 돌렸다. 중국의 6·25전쟁 참전 결정으로 제3야전군 제9병단 등 대만 상륙을 준비하던 부대들이 차례로 한반도로 이동했다.

1958년에는 진먼과 샤먼 간에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1949년 진먼다오 공방전을 이끈 양측 지휘관이 다시 맞붙었다. 대만에선 ‘8·23전쟁’이라 부른다. 8월23일부터 10월5일까지 중국은 진먼에 포탄 47만여발을, 대만은 샤먼에 7만여발을 퍼부었다. 포격전은 20년간 간헐적으로 지속되다가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1979년 공식 종료됐다. 그 후 중국은 샤먼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개혁개방에 나섰다. 대만은 1992년 진먼의 계엄령을 해제했다. 중국의 통상(通商)·통항(通航)·통우(通郵) 등 3통 요구는 2001년 진먼과 샤먼 간 소(小)3통으로 실현됐다. 진먼에는 심리전용 초대형 스피커가 남아 덩리쥔(鄧麗君)의 노래를 들려준다. 이젠 관광자원이다.

진먼과 샤먼, 이 두 먼(門)이 또 한 번 새 역사를 연다. 물이 부족한 진먼이 샤먼으로부터 수돗물을 공급받는 진샤(金廈)송수관 개통식이 5일 열린다. 3통에 이은 통수(通水)다. 대만 민진당 정부는 양안관계 악화를 이유로 개통식 연기를 요청했지만 진먼현 당국은 “민생이 우선”이라며 강행키로 했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