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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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당신은 이 소년이 수확한 담뱃잎을 태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동 노동착취 여전 … 농장에 내몰리는 ‘현대판 노예’ / 정부 담배수출 정책 탓 농사 투입 / 전통적 재배국 브라질 규제 강화하자 / 짐바브웨·인도 등 신흥국서 넓게 퍼져 / 美도 이주민 아동 등 30만∼40만 달해 /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 등 대기업 / 아동노동 감시할 의무 불구 눈감아 / 빈곤의 악순환 갇힌 부모들도 한 몫 / 담배 심거나 수확철 수업 빠지고 노동 / 보호장비 없이 일해 니코틴 중독 만연 / 성인에 비해 오랜 기간 피해 받아 심각
짐바브웨 동부 마쇼나랜드에 사는 다비조(17)는 2015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 담배밭에 나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중학교에 갈 학비를 벌기 위해 담뱃잎 수확 작업에 나섰던 그는 “일을 시작한 그날부터 구토를 했어요”라며 “힘이 쭉 빠지고 몸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라고 그날을 기억했다. 두통과 어지럼증이 동반한 니코틴 중독 증상이 확실했지만 다비조에게 담배 농사의 위험성을 말해주거나 안전 장비를 준 사람은 없었다. 이후 현재까지 담배 농사를 짓고 있는 다비조는 높은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학교를 자퇴했고, 건강마저 잃었다. 그는 “머리가 팽팽 도는 증상이 사라지지 않아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담배 농장에서 퇴출당해야 할 아동 노동이 전 세계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통적인 담배 재배 지역이었던 브라질 등에서 규제가 생기고 감시가 강화되자 최근에는 짐바브웨, 인도 등을 중심으로 아동 노동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단기간에 담배 사업을 통해 경기를 회복하려는 정부와 낮은 비용으로 담배를 조달하려는 대기업, 가난의 악순환에 허덕이는 부모들이 담배 농사의 해악에 눈을 감으면서 건강을 앗아가는 담배밭으로 아이들이 내몰리고 있다.

◆담배 농사짓는 아동 늘어나고 있는 짐바브웨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담배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대농장에 고용된 직원 등 125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이 일하는 작업장의 절반에서 아동 노동이 시행되고 있었다고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 ‘씁쓸한 수확’을 통해 전했다. 짐바브웨 법률에 따르면 16세 미만의 어떤 아동도 노동이 금지되며 18세 이하의 경우 위험한 작업에서 제외돼야 한다.
담배밭 일구는 아프리카 아이들
하지만 HRW가 만난 12~17세 아동 14명과 어렸을 때부터 담배 농장에서 일했던 18~22세 청년 11명은 안전 장비 없이 담배 농사를 지었다고 밝혔으며 한 명도 빠짐없이 니코틴 중독 증상인 메스꺼움, 두통,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또 아이들은 직접 화학물질을 섞어 살충제를 만들거나 살충제를 막 살포한 밭에서 보호장비 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마쇼나랜드 센트럴 지역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펀가이(16)는 “건초를 갈 때마다 재채기하고 숨을 쉬기 힘들어요”라며 “담배 냄새를 맡을 때마다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보건학자들은 니코틴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며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데 유년기에 니코틴을 자주 접하면 두뇌 발달이 저하되고 성인기까지 이런 증상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체형이 작아 성인과 비교해 니코틴을 견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해가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또 직접적인 살충제 노출은 호흡기 장애나 암, 우울증, 임신 불능으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짐바브웨 아이들은 담배 농사에 참여하면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수업마저 결석하고 있다. 교사들은 담배를 심거나 수확하는 등 노동력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주로 아이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 조셉은 “반 학생 43명 중 4분의 1이 담배 농사에 투입되고 있고, 어떤 아이는 전체 학기일 63일 중에 15일 정도만 나왔다”고 말했다. 모든 아이가 동등하며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유엔의 지속가능한개발(SDG) 목표를 짐바브웨가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까지 담배 농사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짐바브웨 아동이 건강을 잃어가며 담배 농사에 투입되고 있는 건 담배 수출로 경제를 일으키려는 정부와 ‘계약 재배’ 방식을 통해 담배를 조달하는 대기업들이 아동 노동 근절을 위한 감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현재 세계에서 6번째로 담배를 많이 수출하는 국가인 짐바브웨는 2000년 백인 대지주의 땅을 몰수해 나눠주는 토지 개혁 이후 담배 농사를 장려하고 있다. 2000년 8500여명 수준이었던 담배 재배업자가 2016년 7만3000여명으로 급증한 배경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쿠데타를 통해 로버트 무가베의 독재를 종식한 에머슨 음난가과는 9억3300만달러(약 1조500억원)의 수출 성과를 거둔 담배 사업을 거론하며 경제 활성화에 담배 농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기조에 맞춰 담배 농사에 대한 각종 안전 규제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아동 노동 감시현황을 묻는 HRW의 요청에 짐바브웨는 2015~2018년 120명의 감독관이 살펴본 결과 ‘2014년 4.6%의 작업장에서 아동 노동이 발견됐을 뿐 조사 기간 어떤 불법행위도 없었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미국 노동부는 2016년에만 866군데 작업장 중 436군데서 아동 노동이 이뤄졌고 짐바브웨 정부가 노동 감시 활동을 진행할 인력 부족을 핑계로 아동 노동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동 노동에 눈감고 있는 건 담배를 공급받고 있는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짐바브웨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은 중간 도매상을 통해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와 같은 세계적인 담배 회사들에 담뱃잎을 정해진 가격에 공급한다. 이 회사들은 계약을 맺은 각 농부에게 담배 생산에 필요한 씨앗, 살충제 등을 지원해주는데 유엔인권이사회의 ‘인권과 기업 책임에 대한 지침’에 따라 아동 노동을 감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짐바브웨에서 담뱃잎을 공급받고 있는 31개사는 청초는 물론 아동들이 담배 관련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고, 적발될 경우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HRW의 인터뷰에 응한 짐바브웨 농부 중 아동 노동 금지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은 없었고, 살충제 등을 방지할 보호장비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카멜, 럭키 스트라이크 등을 생산하는 BAT와 다비도프의 임페리얼 브랜드 등이 아동 노동이 성행하는 인도네시아, 짐바브웨로부터 담배를 공급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규제와 기업의 자발적인 자정 능력 필요

담배 농사와 관련한 아동 노동은 선진국에서도 적발된다. 디 애틀랜틱에 따르면 미국은 16세 미만 청소년이 위험한 작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작은 규모의 농장이나 부모의 허락으로 12세 이하도 큰 농장에서 노동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이민자의 자녀들이 주로 담배 농사 등에 투입되고 있으며 규모가 30만~4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담배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잉그리드(13·여)는 “어른들이랑 비슷한 속도로 작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성폭행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불법적인 아동 노동이 규제가 성긴 짐바브웨와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베라 다 코스타 이 실바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감독협정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담배 농사 지역이 소득이 낮은 국가로 이동하면서 아동 노동 인구가 늘고 있다”며 “2000~2013년 추이를 보면 터키, 브라질, 미국에서 담배 농사에 투입되는 아동 인구는 줄고 있지만 아르헨티나, 인도, 짐바브웨에서는 증가했다”고 말했다.

담뱃잎을 만지는 아동들의 손길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영세 농부들의 소득이 현실화돼야 하고, 아동 노동을 근절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말라위의 농부들은 10개월 동안 22만3710카와치(380달러∙약 42만원)를 버는 데 그쳐 형편이 어려운 부모를 돕기 위한 아이들의 노동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가디언은 “빈곤 가정은 아동을 노동시키면서 대를 이어 가난의 덫에 갇혀 있지만 담배 회사 경영진은 1년에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아동 노동 근절을 위한 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는 곳으로는 브라질이 꼽힌다. 세계에서 2번째로 담배를 많이 수출하는 브라질은 2008년 아동들이 담배와 관련한 어떤 작업에도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아동을 고용한 농장주는 물론 거기서 생산된 담뱃잎을 구매한 기업에도 무거운 벌금을 매겼다. 특히 브라질 정부는 니코틴 중독의 실체를 적극 알렸는데, 농부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미국의 국제보건기구 바이털 스트래티지는 “브라질에서 아동 노동이 완벽히 근절되지 않았지만 담배 농사와 같은 위험한 작업장에서 아이들이 제외되는 등 뚜렷한 진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