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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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초선의원들의 이유있는 ‘반란’

더불어민주당 8·25 전당대회를 설명하는 말 중 하나가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후보 두 명은 10여년 전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이들을 비판하는 후보는 이미 당에서 ‘구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86세대다.

노회한 이들이 어린 후배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24일 초선 의원 초청 토론회에서다. 초선 의원들은 지난달 5일 ‘초선의원, 민주당의 내일을 말하다’ 토론회에서 신랄한 자성의 목소리를 낸 지 약 20일 만에 당대표 후보들을 ‘집합’시켰다. 송영길 의원은 말 그대로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였고, 김진표 의원은 종교인 과세를 유예시켰다는 지적에 진땀을 뺐다. 이해찬 의원은 ‘버럭 총리’라는 별칭과 함께 ‘건강 이상설’까지 해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 초선 의원은 총 66명으로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니다. 이들의 질문엔 상당히 날이 서 있었다. 과거 회귀라고 지적받는 전대 국면에서 “우리도 있다”는 외침으로 들렸다.
홍주형 정치부 기자

20대 초선 의원들은 과거의 ‘민주당 초선’에 비해 유달리 ‘얌전’했다. 19대 공천에 문제 의식이 많았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19대 초선 의원들을 모아놓고 “초선 때부터 누구에게 줄 서지 말라”는 등 군기를 잡았다. 시민사회 출신 ‘행동대장’이 많았던 19대 비례 의원 상당수는 20대에서 공천 탈락했다. 삼엄한 기준을 뚫고 공천을 받은 20대 초선들은 ‘전문가’, ‘모범생’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청와대와 지도부에 반기를 들기보다 국정운영을 잘 뒷받침하는 편을 택했다.

그랬던 이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위기 의식이다. 한 초선 의원은 6일 ‘각성’의 배경을 묻자 “19대 초선이 성과 없이 분란을 일으켰다는 비판이 많아 반작용도 있었고,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가 나설 시간이 없었다”며 “문제의식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선거는 압승했지만, 경제성장은 부진하다. 정권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당의 목소리가 없는 당청 관계’, ‘말뿐인 협치’, ‘경제 부진’ 등 정부·여당에 제기된 다양한 비판이 초선들의 정기 공부·식사 모임에서 꽤 오래 거론됐다고 한다. 그는 “정기국회가 끝난 뒤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하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선 의원의 ‘궐기’는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드러난다. 8명 중 5명을 뽑는 선거에 초선(김해영·박주민·박정 의원) 3명이 출마했다. ‘최저위원’ 선거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초선 출마자가 3명을 넘으면 자체 정리를 해야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있었는데 딱 3명이 출마했다.

현재까지 눈에 띄는 이들의 성적표는 미미하다. 새로운 목소리가 나와야 할 시점을 놓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 반가울 뿐이다. 2004년 총선에서 압승한 열린우리당은 당 분열로 2년 뒤 지방선거에선 참패했다. 탄핵 역풍을 타고 당선된 당시 초선의원들은 좌충우돌하다 ‘108번뇌’라 불렸다. 적어도 지금의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각성보다 실천이 어렵다. 좌충우돌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모범생이 반기를 들기는 더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의 각성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에 잠식된 현 전대 국면에서 보듯 ‘새 바람’이 절실한 때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영원한 과제 ‘세대교체’가 민주당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홍주형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