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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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여성 독립운동가

광복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독립운동사 관련 자료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뜻밖에도 여성이 독립에 헌신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독립운동가 주변에선 부인, 딸, 며느리 등이 큰 도움을 주었다. 여성들은 전선보다 후방에서 주로 활약했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여성이 전면에 나서길 꺼리던 당시 세태도 한몫했다. 독립운동가 민필호의 딸 민영주의 경우 광복군 시절 동지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과 결혼했지만 광복 후에는 언론 인터뷰 등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겸양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여성 독립운동사를 애써 찾으려 하지 않은 탓도 크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1920∼1945년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중 수형기록카드가 남아 있는 여성은 181명인데 치안유지법 위반(99명), 보안법 위반(48명), 출판법 위반(1명)이 148명으로 81.7%가 이른바 ‘정치범’ 또는 ‘사상범’이었다”며 “치안유지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등은 전부 항일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가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의 조국애를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여성이 없었다면 임시정부나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는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총을 든 여성도 적지 않다.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하려 했던 남자현은 의병활동 중 전사한 남편의 피 묻은 군복을 평생 옷 속에 껴입고 다녔다고 한다. 시인 고정희는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그를 기리면서 “피로 받아 쓴 대한여자독립원/ 아직도 떠도는 아낙의 무명지”(‘남자현의 무명지’)라고 노래했다.

지난해 말까지 정부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4830명 중 여성은 296명으로 2%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역사문화원이 국가보훈처 용역사업으로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우당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 석주 이상룡의 손자며느리 허은 등 26명이 올해 광복절 유공자 포상 명단에 포함됐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 볼 때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