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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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미궁 빠질뻔한 잔혹한 범죄… 다신 이런 일 없어야”

‘종교집단 아동 살해’ 끈질기게 파헤친 김동희 검사 / 미취학 아동 소재 파악으로 들통 / 아이 행방 못 찾아 3년 동안 미제 / 진술 제각각 관련자들 거듭 조사 / 유기 개입 피의자 입 열며 실마리 / 죄책감 없는 친모 보며 안타까움 / 앞으로도 억울함 없게 사건 수사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나 수사가 진행됐습니다. 실종사건인지 살인사건인지조차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상태였죠. 피의자 진술도 제각각이어서 혐의 입증이 간단치 않았습니다.”

지난해 4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사체 미발견 아동살해 사건’을 밝혀낸 김동희(43·사법연수원 34기) 검사는 당시 기억을 되살리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김 검사는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한 사건 전모를 파헤친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 상반기 모범검사로 선정됐다. 1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그를 만나 수사 과정을 들어보았다.

지난해 ‘시신 미발견 아동 폭행치사 사건’의 전모를 밝힌 김동희 검사가 1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수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종교집단에서 교주격 피의자와 친모 등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이 세 살배기 아동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암매장했다가 다시 꺼내 훼손해 유기한 사건이었습니다. 친모가 사건 한 달 뒤 경찰에 허위로 실종신고를 했는데 행방을 몰라 3년간 미제로 남았던 사건을 재수사한 것이죠.”

일명 ‘진도견을 사랑하는 모임’의 교주 김모(54·여)씨와 친모 최모(42)씨는 진돗개를 숭배하는 데에 심취했다. 이들과 신도들이 “귀신에 씌었다”면서 최씨 아들을 나무주걱으로 때려 숨지게 한 범행 잔혹성과 비상식성은 미취학 아동의 소재 파악에 나선 경찰의 수사 끝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피의자들에게서 당시 상황에 대해 솔직한 진술을 얻기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관련자들 기억이 일부 흐려진 상태였습니다. 또 본인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각색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같이 경험하고도 모든 사람의 진술이 제각각이었어요.”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아이가 실제로 사망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망했다면 어떻게 희생됐고, 사망 원인은 무엇인지,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에 누가 얼마나 가담했는지 등을 일일이 밝혀내야 공소사실을 확정할 수 있었기에 관련자 조사를 거듭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친모는 사건에 대해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울면서 ‘내가 때려죽인 것’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습니다. 특히 피의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위축돼 좀처럼 진술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5명을 개별적으로 조사했죠. 이동할 때도 서로 마주치지 않게 하고.”

시신 유기 과정에 개입한 피의자 1명이 거듭된 조사 끝에 입을 열면서 비로소 실마리가 풀렸다. 친모가 범행을 숨기기 위해 사건 발생 한 달 후 아이의 실종 신고를 한 사실은 결국 자기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검사는 당시 확보된 피의자와 참고인 통화내역, 발신 기지국 위치 자료 등을 토대로 이들의 이동 경로를 특정해 냈다.

다양한 사건을 수사해 온 김 검사이지만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어린아이였고 범행에 가담한 친모조차 조사 과정에서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 인간적으로 안타까움을 가졌다고 한다.

“검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건들을 가려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너무나 어린아이가 친모도 있는 현장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당했습니다. 사건 당시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고 억울했을까요. 사건이 잘 해결돼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앞으로도 사건을 명확하게 밝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