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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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청해호반에서

박몽구
해발 3천미터 메마른 산들 사이에
맑은 눈 뜨고 있는 청해호에서 맞는 여름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별가족을 본다
20년 만에 갖는 북두칠성과의 해후
마음의 눈을 맑혀주는 것은
버려도 버려도 넘쳐나는 물질이 아니라
신이 내린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는 일이다
토끼풀의 가는 허리마저 덮으며
밤새 불어 젖히는 모래바람
지상에 쌓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으냐고 묻는
티벳 고원의 밤하늘 아래서
서울에 삼켜지면서 잃어버린 꿈을 헨다
오늘 살아갈 양식이 바닥을 드러낸 때
이리떼로부터 목숨같이 지켜온
어린 양을 하늘로 보내는
유목민 마을에 뜬 별이 유난히 곱다
사람이 만든 길을 벗어나
청해호에 잠긴 별을 한 줌 건진다

청해(靑海)호는 해발 3200미터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청해호는 고지대라서 한여름에도 섭씨 15도 정도를 유지한다. 여름 피서지로는 최고인 곳이다.

우리나라 전체 크기의 5분의 1에 달하는 광활한 천연호수에서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별가족을 본다. 시인은 문명과는 동떨어진 시원의 대자연 속에서 밤하늘의 북두칠성과 해후한다. 서울에서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시인은 20년 동안 하늘을 올려다볼 기회조차 없었다.

넘쳐나는 물질과 그 물질을 지상에 쌓는 서울을 떠나 티베트고원의 밤하늘 아래서 시인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꿈을 헤아려본다.

마음의 눈을 맑혀주는 것은 신이 내린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는 일이며, 오늘 살아갈 양식이 바닥을 드러내면 이리떼로부터 목숨같이 지켜온 어린양을 하늘로 보내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밤새 불어 젖히는 모래바람이 사람이 만든 길을 한순간에 없애버린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이 티베트고원에 있듯이 또 다른 초인적인 힘으로 시인은 청해호에 잠긴 꿈을 한 줌 건진다.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