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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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운행정지 명령 초강수에도…뒷북·실효성 논란

명령서 16일 발송… 대상 2만여대/리콜 미이행 차량 때문에 명령 강행/점검 안받고 운행하다 불나면 고발/단순 제작결함 땐 처벌 방법도 없어/제조사 배짱영업·엉터리 리콜 대응/징벌적 손배 등 제도개선 서둘러야
정부가 14일 긴급 안전진단(리콜) 미이행 BMW 차량에 대한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기로 한 데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올해 들어 BMW 차량 39대가 불에 탄 뒤에야 나온 뒷북 대책인 데다,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는 운행정지 명령의 실효성까지 의심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재 위험이 있는 차를 만들어 판 제조사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데 해당 차량 소유자만 불편과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BMW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해 점검명령과 함께 운행정지명령을 발동해 달라"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공식 요청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리콜이 결정된 BMW 차량 가운데 긴급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차량에 대해 15일부터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운행정지 명령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BMW를 통해 파악한 리콜 미실시 차량 정보를 지자체에 전달하고, 각 지자체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차량 소유자와 소유자 주소지 등을 파악해 운행정지 명령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한다. 명령의 효력은 운행중지 명령서를 대상 차량 소유자가 수령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15일이 공휴일이라 실제 운행정지 명령서는 16일부터 발송될 전망이다. 또 대상 차량은 많아야 2만여대 정도로 예상된다. BMW 측은 전국의 서비스센터에서 주·야 구분·휴무 없이 하루 7000대에서 1만대가량의 차량에 대한 리콜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16일에 발송된 등기우편이 소유자에게 배달되는 시점쯤이면 모든 차량의 점검을 끝낼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운행정지 명령을 강행하는 이유는 리콜을 받지 않으려는 일부 차량 소유자들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경욱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운행정지 명령은 빨리 안전진단을 받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며 “안전진단 초기에는 서비스센터 점검 능력이 부족했지만, 최근 동향을 보면 서비스센터 점검 능력에는 여유가 있는데 차량 소유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BMW 리콜 대란 BMW 리콜 차량에 대한 운행정지 명령이 내려진 14일 오후 서울의 한 BMW 서비스센터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점검을 받으려는 BMW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이제원 기자
리콜 미이행 차량이 계속 도로를 달려도 경찰이 일일이 차량 정보를 조회하지 않는 한 이를 적발하거나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이에 정부는 명령을 무시하고 운행에 나섰다 불이 나는 경우 적극적으로 차량 소유주를 고발할 작정이다.

불이 나는 자동차를 들여와 판 BMW코리아 대신 차량 소유주가 책임을 지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온다.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이번 사태가 단순한 제작결함 등으로 밝혀지면 BMW 측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 BMW코리아가 제작 결함을 알고도 은폐했거나 축소했다는 결론이 나와도 10년 이하 징역이나, BMW 고급 차종 1대 값도 안 되는 1억원 이하 벌금 처분만 가능하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장이 BMW 독일 본사 및 한국 임원 등 7명을 결함 은폐·축소 등 자동차 관리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성원초등학교 운동장에 BMW 차들이 주차해있다. 국토교통부가 BMW 리콜 대상이면서 아직 긴급 안전진단을 받지 못한 BMW 차량에 대해 운행중지 명령을 내린다고 14일 밝힌 이후 학교 옆 BMW 서비스센터를 찾은 차량이 크게 늘어 방학 중인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리콜 대상 차량 소유주의 불편은 장기화가 예상된다. BMW 측은 전체 리콜 대상 차량 10만6317대 모두를 교체할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부품을 오는 12월쯤 돼야 모두 확보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국 완성차 제조사의 배짱 영업과 엉터리 리콜에 강력 대응하기 위한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부는 12일 국회에 보고한 향후 계획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신설하고, 제작결함 은폐·축소 시 제조사 전체 매출의 1%를 과징금으로 물리는 리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는 15일부터 정부서울청사와 세종청사 등 전국 10곳의 정부청사에서 리콜 대상 BMW 차량의 지하주차장과 필로티 공간 주차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