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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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안희정 무죄 선고… 성대결보다 성문화 바꾸는 계기 삼자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는 어제 열린 선고공판에서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와 관련해 “피고인이 (성관계 과정에서)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김씨를 5차례 기습적으로 강제 추행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김씨가 안 전 지사와 관계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안 전 지사는 김씨를 상대로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여성계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번 고민을 반복할 피해자들에게 침묵에 대한 강요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남성 혐오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선 “이 나라는 진짜 미쳤다”, “사법부까지도 한통속이다” 등의 격앙된 반응이 많았다.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회원들은 시위에 나설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여성계는 재판부가 법리와 증거에 따라 판결을 내린 만큼 반발하기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옳다. 판결에 불만이 있다면 증거를 보강해 2심과 3심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의 증표다. 때마침 검찰도 항소할 뜻을 밝힌 상황이 아닌가.

‘미투’는 가해자 개인에 대한 사법처리를 넘어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운동이다. 우리 사회의 숨겨진 억압과 위선, 폐습을 폭로하는 변혁 운동인 것이다. 가해자 처벌 여부로 불필요한 논란을 확산시키는 것은 온당한 자세가 못 된다. 여성계 일각에선 그간 미투 운동을 남성 혐오 등 성 대결의 불쏘시개로 삼는 일이 없지 않았다. 미투 운동의 심각한 일탈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안 전 지사 무죄 판결이 우리 사회의 성 대결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흘러선 안 된다. 이번 일을 우리 사회에 성 평등 의식을 고양하고 여성이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