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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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코인 거품 사라진 자리 뭐가 남았나?…블록체인 개발 전쟁

암호화폐 열풍 그 후 / 국내 업계는 고사 위기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상화폐(암호화폐)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며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의 이 한마디에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전날 최고가 대비 27.6%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7개월이 지난 지금 이 암호화폐들을 구현화한 기술인 ‘블록체인’은 어떤 상황일까.

◆암호화폐 거래는 도박 vs 블록체인 개발에는 필요악

다소 복잡한 원리를 담고 있는 블록체인은 쉽게 ‘암호화를 통한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기존 인터넷이 중앙 서버에 데이터를 모두 저장하는 방식이었다면, 블록체인은 이를 각 개인에게 분산화한다. 데이터가 한곳에 몰려 있지 않기 때문에 보안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은 차세대 신뢰관계 구축에 유용한 기술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금융업계와 정보기술(IT)업계를 중심으로는 “비트코인을 잡으려다 블록체인까지 죽는다”는 말이 돌았다. 사행성 우려로 비트코인 거래를 막으려다 블록체인 기술 개발마저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업계는 정부의 움직임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9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기업 제외업종에 추가하는 내용의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특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벤처기업 업종에서 제외되면 정부의 정책지원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한국블록체인협회 등은 이 사안에 대해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은 유흥 또는 도박업종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됐다”며 “블록체인 기술 기반 기업의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는 막힐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유관) 기업들은 고사하게 되거나 해외로 이전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해외 IT기업들, 블록체인 기술 접목에 박차

해외는 과연 블록체인 개발의 천국인 것일까. 우선 최근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은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개발로 유명한 IBM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은행을 대상으로 한 블록체인 플랫폼인 ‘레저커넥트’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블록체인을 개발해 온 탓에 호환성이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할 플랫폼을 내놓은 것이다. 이 플랫폼의 시범운용에는 바클레이즈, 씨티그룹 등 대형은행 9개가 참여하고 있다.

구글도 지난달 23일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인 ‘디지털 에셋’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 경제지 포천은 이에 대해 구글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구글 클라우드’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T 개발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중국은 지난해 9월 암호화폐 거래는 전면 금지하면서도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는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지난 6월 허베이성 슝안(雄安)신구 계획 요강을 정식으로 비준했는데, 이 요강에는 블록체인과 관련한 프로젝트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펀드를 조성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울러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본사가 위치한 저장성 항저우시도 블록체인 펀드에 총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중국 정보제공업체인 ITJUZI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자금 조달에 성공한 중국 스타트업의 41%가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17년 블록체인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한 국가다. 
◆한국 블록체인 시장도 확장세…컨트롤 타워 부재는 숙제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개발이 통신사와 플랫폼 사업자 등 IT업계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통신업체 KT는 블록체인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통신망에 적용한 ‘KT 네트워크 블록체인’을 선보였다. 본인인증, 로밍, 에너지관리 등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동시다발적으로 거래내용을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KT 측의 설명이다. 원희룡 제주시사도 지난 8일 제주시를 블록체인 암호화폐 특구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제주도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전담팀(TF)을 구성해 논의를 진행하자고 말했다.

이 같은 기업과 지자체의 블록체인 개발에 따라 국내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블록체인 시장은 올해 500억원에서 2022년까지 약 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업계가 가장 크게 문제시하는 것은 ICO(Initial Coin Offering)다. 이는 향후 특정 블록체인 기반 네트워크에서 사용될 자산이나 화폐를 아직 네트워크가 충분히 분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의 법정통화로 구매하는 행위다. 단기간 가치 상승을 바라는 일종의 선물거래로, 도박성이 짙다. 업계 관계자는 “ICO 문제가 해소돼야 블록체인을 활용한 거래가 널리 상용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심사할 수 있는 방안이 뚜렷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7월 빗썸, 업비트 등 암호화폐 거래소는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회의 1차 자율규제심사를 통과했다. 위원회는 당시 심사 기간까지 늘려가며 참여한 모든 회원사를 통과시켜 ‘심사가 사실상 유명무실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히 대규모 해킹 사태를 겪은 거래소 ‘빗썸’도 심사를 통과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업계는 현 상황에 대해 ‘컨트롤 타워 부재’ 문제를 지적한다. 정부가 명확한 주무부처를 제시하지 못한 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사이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은 사업하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광풍에 겁을 먹은 정부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으로 블록체인 정책을 운용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