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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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매케인의 마지막 메시지

‘미국의 품격’을 담았다는 사진이 있다.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미국 전직 대통령 4명 등의 모습을 찍은 지난 4월21일의 사진이다. 제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부인 바버라가 타계하자 과거의 정적들이 앙금을 털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역사학자 미쉘린 메이나드는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보여준다”는 칼럼을 썼다.

사진이 눈길을 끈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현직 대통령의 부재(不在)다. 도널드 트럼프는 장례식에 불참했다. 백악관은 경호를 핑계로 댔지만 부시 일가와의 불화 때문으로 보는 이들이 허다했다. 앞서 2016년 대선에서 아버지 부시는 힐러리 클린턴을 찍었고, 아들 부시는 기권했다고 한다.

백악관은 5월 극비 회의를 열었다. 내부 발언 누설자를 색출하기 위한 회의였다. 뭔 발언이었을까. 당시 말기 뇌종양을 앓던 미국 보수의 거목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중앙정보국(CIA) 국장 인사에 반대하던 것과 관련해 한 보좌관이 “상관없어. 그는 어쨌든 죽어가고 있으니까”라고 한 것이 새나갔던 것이다.

막말이 보도되자 백악관은 “매케인 의원의 국가를 위한 헌신에 감사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색출이었던 모양이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정보 유출자는 반역자, 겁쟁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매케인 장례식이 그제 엄수됐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없었다. 어디에 있었을까. 골프장이다. 이번엔 초대를 못 받았으니 트럼프에게도 할 말이 많겠지만 왜 하필 골프장인지 모를 일이다. 자기 장례식을 직접 기획한 매케인은 옛 라이벌인 두 전직 대통령, 아들 부시와 버락 오바마에게 조사를 맡겼다. 트럼프는 이중삼중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로이터통신의 촌평이 일품이다. “트럼프는 ‘부재’를 통해 그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

고인의 딸인 방송인 매건은 유족 인사말에서 “매케인의 미국은 언제나 위대했기 때문에 더 위대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 트럼프의 슬로건(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을 정면 겨냥한 셈이다. 트럼프의 분열적 정치를 내리치는 죽비가 따로 없다. 매케인의 마지막 메시지로 읽어도 무방할 듯하다.

이승현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