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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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국산 관세 폭탄'에…부메랑 맞는 美기업 속출 [세계는 지금]

‘G2’ 무역전쟁 거센 후폭풍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이 자동차업계의 주요 생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미 자동차기업 포드가 중국에서 생산한 자사 차량을 미국에서 판매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한 데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와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미국 기업이 피해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미 산업계 일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로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고 한탄하고 있다. 중국산 부품이나 반제품을 사용하는 중소 제조업체는 물론 골동품 및 경매업계 등 미·중 무역전쟁에 애끓는 업계의 하소연을 살펴봤다.

◆‘해외공장 추가’ 포기했던 美 자동차업계 또다시 곤욕

포드 북미 책임자인 쿠마 갈로트라는 전날 “중국에서 생산한 포드의 소형차 ‘포커스 액티브’의 미국 내 판매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포드는 2019년 하반기부터 포커스 액티브를 미국에서 판매할 예정이었는데, 트럼프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중국에서 수입한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자 이를 포기한 것이다. 갈로트라는 “관세 영향을 피하려고 미국에서 판매 취소를 결정했다”면서도 “중국산 포커스 액티브의 연간 판매 전망은 5만대 이하라서 매출에 영향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로 해당 차량은 대당 500달러 이상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올해 초 포드는 생산비 증가를 이유로 일부 모델을 제외하고는 미국 내 생산을 중단했다. 특히 수익성이 낮은 소형차 생산을 인건비가 적게 드는 중국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었는데, 이번 관세 부과 조치로 더 이상 쓸 수 없는 카드가 된 셈이다.

또 다른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일단 ‘인내’를 택했지만 정부의 정책 변화가 없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GM은 지난 7월부터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뷰익’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엔비전에 25%의 관세 폭탄을 맞고 있다. GM은 관세에 해당하는 비용을 자체 부담하면서 정부에 관세 적용 제외를 요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포드의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이 해외에 생산거점을 둔 자국 기업의 피해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특히 “미국 자동차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해외공장 추가 문제로 눈 밖에 나 있었다”며 “당시 인건비가 싼 멕시코 등에 공장을 더 짓거나 이전하려던 계획을 모두 철회하고, 국내 일자리를 확충했지만 또다시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美 중소기업들 막대한 타격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관세 조치는 중국에 공장을 둔 미국 기업들의 경영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WSJ는 특히 소규모 기업과 신생 기업에 먼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처럼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기기가 쉽지 않고,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바로 고객에게 전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의류·신발협회의 릭 헬펀바인 회장은 CNBC 인터뷰에서 “이번 관세 조치로 심각한 문제를 떠안게 됐다”며 “공급체인이 파괴되고, 미국의 비즈니스에 위해가 초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헬펀바인 회장의 설명은 간단하다. 낮은 인건비 등을 이유로 중국에서 제조해 미국에 판매했는데,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다 이익이 감소한 기업들은 결국 일자리를 줄이게 될 것이라고 그는 우려했다. 지난해 미국 의류의 41%, 신발의 72%가 중국을 거쳐 미국에 수입됐다. 헬펀바인 회장이 의류업계와 신발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고 밝힌 배경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 있는 전기자전거업체 M2S는 자신들이 디자인한 자전거를 중국 진화시의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에서 판매한다. 하지만 대중 관세 조치로 대당 3250달러인 자전거 가격은 425달러가량 오르게 됐다. M2S는 미국에서 비슷한 모터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도매가격을 낮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브릴리언트 홈 테크놀로지’는 와이파이로 연결되는 스마트 조명 스위치를 249달러에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중국산 전자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조치로 제품 가격은 299달러까지 올려야 할 처지다.

◆미술·골동품업계도 고사 위기 “주도권 넘어간다”

중국산 미술품과 골동품에 관세를 매기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관련 업계의 우려도 크다. 지난주 미술관, 경매업계, 골동품상 등 관련 업계 종사자 수백여명은 워싱턴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석해 대중 관세에 대한 우려감을 표시했다. 관세 조치로 미술품과 골동품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비영리 문화 정책위원회’ 변호사 케이트 기븐은 트럼프 행정부가 벌이는 무역전쟁 탓에 미술계가 고사할 위기라고 언급했다. 그는 특히 “골동품이나 오래된 예술 작품은 첨단기술이나 지적재산권과 아무 관련이 없다”며 “이번 조치가 실행되면 미국은 전 세계 예술 시장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물론 미국 내 일자리도 점점 사라질 게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000억달러(약 223조5000억원)어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발동하기로 하면서 업계에 205쪽짜리 ‘관세 대상 품목 리스트’를 전달했다. 리스트의 205쪽에는 ‘100년 이상 된 골동품’이 언급돼 있고, 그림·드로잉·조각 등도 포함됐다. 기븐 변호사는 “우리는 오래된 예술 작품을 제조하거나 성장시키지 않는다”며 “실물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데도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CNBC는 “예술이 미·중 무역전쟁의 볼모가 됐다”면서 “미국이 주도한 세계 경매시장은 물론 미술계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미 홍콩이 중국 예술품과 골동품 판매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기에 관세 부과 후 미국 시장은 크게 위축될 전망이라고 CNBC는 덧붙였다.

◆중국의 비관세 보복으로 ‘이중고’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실제 투자를 미루고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판매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의 비관세 보복까지 겹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과 거래하는 일부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통관 지연을 경험하고 있다”며 “이미 비관세 보복조치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중국에 미국산 체리를 공급해 온 한 미국 기업은 “최근 중국 남부지역 세관에서 체리를 실은 상자가 일주일간 묶여 부패된 채 반송됐다”고 WP에 밝혔다. 중국에 자동차를 수출해 온 또 다른 미국 기업도 “제품 통관 시 무작위 검사가 일반적이었는데, 최근에 검사가 98%나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WSJ는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에 보복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비관세 조치들이 부각될 수 있다”며 “이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중국에 있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 규모는 5060억달러에 달했지만, 미국산 제품 수입액은 1300억달러에 그쳤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중국은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투자와 서비스 등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규모는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 규모의 9배에 달한다. 미국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관세 전쟁으로 피해를 보고,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비관세 보복에 노출되면서 힘든 날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