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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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날' 대비해 뉴질랜드에 벙커 짓는 실리콘밸리 갑부들

핵전쟁, 생물학전, 좀비세상, 상위 1% 겨냥 혁명 등 대비
90억원짜리 28평 벙커를 미국서 만들어 뉴질랜드로 운송…"소행성 추락 쓰나미엔 뉴질랜드도 무방비"

미국 실리콘밸리 갑부들이 핵전쟁이나 생물학전, 부를 독차지한 상위 1%를 겨냥한 혁명 같은 '최후의 날'에 대비해 뉴질랜드를 피난처로 삼아 호화 벙커를 짓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실리콘밸리의 사교 모임에서 이야기만 되던 '지구 종말의 날' 대피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실리콘밸리 갑부 파티에선 유명한 벤처 자본가가 샌프란시스코 자신의 집 차고에 총기를 가득 담은 가방이 실린 오토바이를 준비해두고 있다고 참석자들에게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5일(현지시간) 이 파티 참석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 오토바이는 꽉 막힌 도로를 빠져나갈 수단이고, 총기는 달려드는 좀비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오토바이로 개인 전용기가 있는 곳까지 가서 그것을 타고 네바다주 한 격납고에 다른 4명의 억만장자와 공동으로 준비해 둔 탈출용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로 피난할 계획이다.

지난해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뉴질랜드로 탈출하겠다고 말했던 실리콘밸리 벤처육성 업체 '와이콤비네이터'의 최고경영자 샘 알트만은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선 "지금처럼 연결된 세계에서 지구 어디든 도망가서 숨을 데도 없다"고 농담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생물학전이 인류 문명의 가장 큰 위협이라며 총, 항생제, 전지, 식수, 담요, 텐트, 방독면 등을 넣은 비상대피용 가방을 준비해 뒀다고 밝혔다.

지난해 세계 정·재계 고위인사들이 참가하는 다보스포럼에선 실리콘밸리 갑부들이 "사회 전체가 상위 1%를 잡으려 하는 혁명이나 격변"이 올 것을 예상하면서 뉴질랜드로 피난하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도 했다고 대형 지하벙커 제작업체 '비보스 프로젝트'의 설립자 로버트 비시노는 말했다.

뉴질랜드를 피난처로 삼은 갑부들은 몸만 옮기는 게 아니라, 비밀리에 대규모 지하 벙커를 설치하고 있다. 벙커는 미국에서 만든 후 미국 내에선 여러 덩어리로 나눠 여러 대의 대형 트레일러로, 뉴질랜드까지는 선박으로 옮겼다.

한적한 곳에 땅을 파고 묻는 작업에 2주가 걸린다. 작업은 지역 주민들도 모르게 진행하며 묻은 후엔 출입구 흔적도 남겨놓지 않아서 벙커 주인들도 위성항법장치(GPS)로 위치를 찾는다.

최근 몇 달 사이에만 해도 무게 150t에 면적 93㎡(28평)의 대형 벙커 2채가 뉴질랜드로 운반돼 3m도 더 되는 지하에 묻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800만 달러(90억 원) 짜리인 이런 벙커를 지난 2년간 실리콘밸리 기업가 7명이 사서 뉴질랜드에 설치했다고 이 벙커 제작업체 '라이징 에스' 측은 밝혔다.

미국 사회에선 냉전 시대 핵전쟁 우려를 비롯해 종말론 문화가 오래됐지만 "실리콘밸리 갑부들이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은 세계의 종말이 걱정되면 정교하게 만든 피난 계획을 실행에 옮길 만한 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부자들이 뉴질랜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지리적으로 외딴 위치와 느슨한 비자 규제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대륙인 호주로부터도 4천㎞나 떨어진 고립성이 과거엔 경제에 불리한 점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부자들을 끌어들이는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행성이 태평양에 떨어지는 날이면 뉴질랜드 최고봉까지 바닷물에 잠길 것이기 때문에 뉴질랜드도 최상의 해법은 아니라고 비보스 프로젝트 설립자 비시노는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