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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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보다 공유”… 장소·물건 빌려쓰는 ‘합리적 소비’ 뜬다[S스토리]

코웨이 정수기 대여사업 ‘국내 시초’/우버·에어비앤비 성공에 폭발 성장/세계시장 2025년 3350억달러 전망
공유경제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사무용품이 갖춰진 사무실을 함께 쓰고 최근에는 큰 집을 여럿이 나눠 쓸 수 있는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를 나눠 타고 월급보다 비싼 핸드백을 잠시 빌려서 이용하기도 한다. 대기업들도 공유산업에 뛰어들며 시장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7일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에 따르면 2013년 150억달러(약 16조8525억원) 수준이던 세계 공유경제 시장은 2025년 3350억달러(약 376조3725억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공유경제는 합리적인 소비와 자원의 낭비를 줄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속 성장을 질주하고 있다.

공유경제라는 개념은 1984년 마틴 와이츠먼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논문을 통해 세상에 처음 등장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로렌스 레시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참여자의 유익’을 강조한 공유경제의 형태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차량이나 숙박을 공유하는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성공이 공유경제 가능성을 입증하며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국내 공유경제는 1998년 코웨이가 국내 최초로 정수기 대여사업을 시작하면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코웨이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닥쳤고 비싸지만 필요한 정수기를 보급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금의 렌탈을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공유경제 모델이 활발해진다는 의미다.

정수기는 구매해 사용하는 것보다 빌려 쓰는 이용자가 더 많을 정도로 렌탈이 대중화됐다. 최근에는 필터교체 등 관리가 필요한 공기청정기나 비데 등은 물론 가전제품을 렌탈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공유경제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타고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다. 농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부터 서예나 미술 같은 예술은 물론 외국어와 논술 등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나누는 공유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잡플래닛처럼 취업이나 이직을 앞둔 사람들에게 특정 회사에 재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서비스도 나타났고 오픈갤러리 같은 국내 인기 미술작가의 작품을 개인이나 법인 고객에게 빌려주고 일정 기간 이후에 그림을 교체해주는 예술작품 공유 플랫폼도 등장했다. 아이의 졸업식이나 입학식 행사가 있을 때 인기가 높아지는 명품백 대여 서비스 업체나 전자책을 빌려주는 업체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일 서브원의 공유오피스 ‘플래그원’에서 스타트업 입주기업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입구에는 LG전자 안내로봇이 공유오피스 이용정보와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
서브원 제공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슈퍼카를 대여해주는 업체도 있다. 슈퍼카 대여업체 관계자는 “일정 거리를 타고 난 뒤 교체해야 하는 클러치 가격이 소형차 한 대 값일 정도로 비싸고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하는 타이어값도 수백만원에 이른다”며 “람보르기니의 하루 대여 비용이 150만원이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쪽은 오피스 공유 서비스 분야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이 지난해 600억원 규모에서 매년 평균 63% 성장해 2022년 7700억원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태평양물산의 넥스트데이와 패스트파이브, 위워크 등이 공유오피스 사업을 펼치고 있고 LG서브원 등도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태평양물산 이재팔 대리는“보증금이 없어서 초기 계약할 때 큰돈이 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청소 등 직원들이 직접 하기 꺼리는 일도 누군가가 맡아서 해주고 복사기 등 기본적인 사무용품도 갖춰져 있어 초기단계의 기업이 이용하기 편리하다”고 소개했다. 유기견 후원 스타트업인 십이견지는 13개월째 공유오피스를 사용하고 있다. 최윤웅 십이견지 대표는 “계약기간이 월 혹은 분기 단위로 짧은 편”이라며 “교통이 편리한 서울의 역세권에 사무실이 위치해 접근성도 높다”고 말했다.

사무실 임대 이후 주거공간을 함께 쓰는 플랫폼도 나타났다. 패스트파이브는 공유형 주거공간 ‘라이프’를 최근 출시했다. 패스트파이브가 계약기간과 입주, 입주 후 관리를 책임지고, 공유공간에서 커뮤니티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 박지웅 패스트파이브 공동대표는 “서울의 젊은 1인가구의 고민을 줄여주고 싶다”며 “2030 직장인의 취향을 고려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1인가구가 몰려들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들도 관련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SK텔레콤은 주기적으로 최신 스마트폰을 교체하는 이용자들 위해 스마트폰 렌탈 상품을 출시했다. 롯데는 렌탈전문 계열사인 ‘롯데렌탈’을 론칭하고 ‘묘미’ 서비스를 오픈해 명품 가방이나 고급음향기기 등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서준렬 한국공유경제진흥원 이사장은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운 것들이나 한정된 재화나 토지, 공간을 나눠 쓰는 형태의 공유경제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추세”라며 “하지만 규제와 기존 사업자의 반발로 성장이 가로막힌 상황이어서 정부의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