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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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運將의 조건

“대한민국 군대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는 장군은 용장(勇將)도, 지장(智將)도, 덕장(德將)도 아닌 운장(運將)이다.”

우리 군의 수뇌부 인사에 대해 한 예비역이 “(기수에서) 1등인 사람이 무조건 진급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라며 기자에게 남긴 말이다. 군인으로서 최고의 직위인 4성 장군과 국방부 장관을 모두 거치려면 능력과 성품, 자기관리와 더불어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장포대’(장관 포기한 대장·장군 포기한 대령)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돌 정도로 진급이 어려운 우리 군의 현실을 극복하고 직업군인에게 가장 큰 영예를 두 번이나 누린 사람이라면 운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하다. 하지만 4성 장군과 국방부 장관을 거친 군인들을 보면 “이들이 진정 운장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재임 도중이나 퇴임 후 구설에 시달리며 그나마 갖고 있던 명예마저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기자

진보와 보수 정부를 넘나들었던 김관진·김장수 전 장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운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관운(官運)이 좋았던 김관진 전 장관은 노무현정부 시절 합참의장을 거쳐 이명박정부 당시인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에도 자리를 지켰다.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서 박근혜정부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 장수’로 불렸던 김장수 전 장관은 노무현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의원, 박근혜정부에서는 국가안보실장과 주중 대사를 지냈다. 두 사람이 공직에서 물러나자 그들을 감싸던 ‘운’은 사라졌다. 김관진 전 장관은 국군사이버사령부 정치관여 활동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김장수 전 장관은 세월호 사고 당시 보고 시간을 임의로 바꿨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입각하는 대신 무리수를 뒀던 것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 기조와 맞물리면서 부메랑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 두 번째 국방부 장관에 내정된 정경두 후보자는 제기된 의혹이 많지 않아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공군 출신으로서 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을 모두 거치는 그랜드슬램 달성을 눈앞에 뒀다는 점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관운이라 할 만하다. 정 후보자가 진정한 운장의 경지에 오르려면 넘어야 할 산이 남아있다. 단순히 장관이 됐다고 해서 운장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공직 경력을 명예롭게 잘 마무리해야 진짜 운장으로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로서 올바른 처신이 요구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면서 태산처럼 무겁고 신중한 언행을 취할 필요가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후배도 포용하면서 군 내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이것만 잘 지키면 퇴임 이후에도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운장으로 남을 수 있다. 장병들은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군 선배를 원한다.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자리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군인들에게 ‘본받고 싶은 올바른 군 선배’ ‘진정한 운장’으로 기억되는 것은 국방개혁 2.0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지닌다는 점을 정 후보자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