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여행] 뻔하게 파리투어? 별나게 古城 찬가!

“왜 이러지. 모든 곳이 익숙해. 어색하지 않고, 전에 여기 와 본 것처럼.” “무슨 소리야. 여기 처음 왔잖아.”
“그렇지. 처음인데, 꼭 와 봤던 곳 같아. 혹시 전생에 내가 여기서 살았던 것 아닐까.”
일행 중 한 명이 전생에 자신이 왕자나 공주였을 것이라는 얘기를 던지자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어릴 때 접한 만화에 나오는 왕자, 공주는 아름다운 정원을 품은 화려한 궁에서 지낸다. 이국적인 유럽의 궁전과 성은 어떤 곳일까란 궁금증 내지는 그곳에선 왕자와 공주를 만날 수 있을까란 기대를 은연중 품게 된다. 만화에 나오는 고성의 배경으로 자주 거론되는 곳이 프랑스다. 베르사유 궁전 등 유럽 하면 떠오르는 형태의 궁전들이 곳곳에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가는 파리에서는 상상했던 모습의 궁전이나 성을 보긴 힘들다.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몽마르트 언덕 등 파리 시내를 돌아보기에도 일정이 촉박하다. 프랑스를 찾는다면 대부분의 일정을 파리만 둘러보는데 쓰게 된다.
이런 일정에서 잠시 벗어나면, 프랑스 왕실과 귀족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고성 투어를 즐길 수 있다.
수백년 동안 고유한 특징과 얘기를 품은 고성들을 둘러보면 프랑스의 화려하고 찬란한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완성되기까지 800년이 걸린 성. 현재 수도원으로 쓰이고 있지만, 한때 프랑스군의 요새 역할을 하기도 했고, 프랑스혁명 때는 감옥으로 이용되었다.
◆세상의 끝에 서있는 듯한 풍광

차를 타고 초원이 펼쳐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멀리 성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야의 끝에는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또는 수평선이 그어져 있을 뿐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는 성채 단 하나뿐이다. 성 너머로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의 끝에 서있는 듯하다. 경이로움을 품은 채 가까이 다가가 성을 마주하면 주위를 압도하는 위압감에 기가 눌린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차로 달려 4시간 정도 떨어진 몽생미셸의 첫인상은 그동안 본 프랑스의 다른 풍광을 잊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몽생미셸이라는 얘기가 헛말이 아닐 듯 싶다.

주위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전부다. 바다 한가운데 둘레 900m, 지름 140m 밖에 되지 않는 돌섬에 서있는 성채와 하늘을 찌를듯한 첨탑의 위용에 기가 눌려 눈길이 다른 데로 향하지 않는다.
몽생미셸 주위의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15m나 된다. 육지와 섬까지 나무 다리로 연결돼 있다.
성이라기보단 수도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708∼710년 아브란슈의 주교 오베르가 꿈에서 세 번이나 미카엘 대천사에게 예배당을 세우라는 명령을 듣고 돌섬 위에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몽생미셸은 ‘성 미카엘 대천사의 산’이라는 의미다. 처음엔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예배당이었지만, 1023~1034년 교회당이 증축됐고, 12세기에는 성벽을 쌓아 영국과의 백년전쟁 중 요새 역할을 겸했다. 프랑스 혁명 때는 감옥으로도 사용됐다.

몽생미셸 입구 ‘왕의 문’을 통과하면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140년을 이어온 몽생미셸의 오믈렛가게와 우체국이 눈에 들어온다. 우체국은 몽생미셸이 과거 수도원, 감옥이었을 때 유일한 외부와의 연결통로였다. 좁은 골목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면 성직자들이 지내던 예배당과 회랑 등이 나온다. 외부와 단절된 채 검소한 삶을 살았던 성직자들을 위해 지은 수도원이기에 건물 내를 밝히는 빛은 작게 뚫린 창이 전부다. 수도회 신부들은 기도를 하지 않을 땐 일을 했다. 대화조차 금지됐을 정도다. 그들이 하는 일은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빛조차 사치로 여겼을 공간에서 한겨울 난방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이들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던 공간은 뻥 뚫린 하늘을 볼 수 있는 회랑이다. 이곳에선 성경을 소리내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셈이다.

몽생미셸은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코스 중 하나였다. 이 성을 바라보며 많은 순례자가 바다에서 숨을 거뒀다. 몽생미셸 주위의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15m나 돼 썰물, 밀물에 따라 이 성은 육지와 섬이 되길 반복한다. 몽생미셸이 보이는 아봉슈 마을에 도착한 후 썰물 때를 기다려 바다를 건넜는데, 이 거리가 7㎞에 달했다. 때를 잘못 맞춰 밀물 때가 되면 오도가도 못한 채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지금은 육지와 섬까지 나무 다리로 연결돼 있다. 현대에 와서 잠시 잊혀졌던 몽생미셸은 대문호 빅토르 위고를 통해 보존운동이 진행됐다. 보수를 거쳐 1978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프랑스의 작은 어촌마을 옹플뢰르는 목조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옆집을 담벼락 삼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수수해 보이는 목조 건물들이 이 지역을 대표한다.
파리에서 몽생미셸에 가면 중간에 작은 어촌마을 옹플뢰르에 들릴 수 있다. 파리 등에서 보던 석회석 건물이 아닌 목조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형태도 모두 제멋대로인데 15세기 백년전쟁이 끝나고 마을은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건축가가 없어 주민들이 직접 집을 지었다고 한다. 통일된 양식도 없고, 옆집을 담벼락 삼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수수해 보이는 목조 건물들이 현재 이 지역을 대표하고 있다. 마을 중앙의 가타리나 성당도 목조 건물인데, 지붕을 보면 거대한 선박을 뒤집어 놓은 형상이다. 
배를 만드는 어촌 마을이기에 건조한 배를 뒤집어 성당 지붕을 만든 것이다. 마을 골목마다 작은 갤러리와 초콜릿가게, 카페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는데, 1∼2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화려한 유럽 정원의 진수

우리의 수도권처럼 프랑스에선 파리를 포함에 주위 지역을 ‘일 드 프랑스’로 통칭한다. 프랑스 왕국의 발상지가 이 지역이어서 다른 지역보다 고성들이 많이 남아 있다. 유럽의 성하면 떠오르는 베르사유 궁전 외에도 다양하고 화려한 정원과 성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보르비콩트 정원.
화려한 프랑스 정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보르비콩트성이다. 파리에서 2시간 정도 차로 가야하는 이 성은 17세기 프랑스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의 성이었다. 당시 사용한 화려한 외형의 마차와 벽장식 양탄자, 천장화 등이 잘 보존돼 있다. 푸케는 정원조경사 르 노트르에게 최고의 성을 건축할 것을 지시했고, 그는 주변 마을 세 개를 없애고 인부 1만8000명을 동원해서 5년 동안 성과 정원을 조성했다. 완공 후 성에 초대된 태양왕 루이 14세가 자기의 성보다 더 화려하자 푸케의 비행을 조사했고, 푸케는 도망치다가 ‘삼총사’ 등장하는 달타냥에게 붙잡힌 뒤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보르비콩트성으로 최고의 위치를 자랑했던 푸케는 이 성으로 결국 망하게 된 것이다.
이후 루이 14세는 이 성을 만든 르 노트르에게 최고의 궁전을 건설을 할 것을 지시했고,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졌다. 루이 14세의 질투심이 베르사유를 완성한 셈이다.

프랑스 성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궁전이 베르사유지만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것을 감안하면, 보르비콩트성이 오히려 프랑스의 정원을 감상하기엔 더 나을 듯싶다. 베르사유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정원과 그 안의 운하 등 규모에 놀란다. 둘러봐도 너무 커서 어디가 어딘지 헷갈릴 정도다. 반면, 한눈에 들어오는 보르비콩트는 프랑스 정원이 이런 곳이란 것을 확연히 느끼게 해준다.
보르비콩트성 위에 조성된 전망대에 오르면 데칼코마니 한 듯 좌우가 똑같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1㎞가 넘는 정원은 가운데 길이 나있고 좌우로 잔디와 꽃이 있는 화단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동양의 양탄자 문양을 모방했다고 한다. 화단의 중앙에는 ‘왕관의 연못’이 있고, 그 너머로 다시 잔디밭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맞은 편 언덕엔 헤라클라스 동상이 서 있다. 
베르사유가 생기기 이전, 중세 봉건시대부터 나폴레옹 3세에 이르기까지 왕족들의 사냥터이자 별궁으로 쓰였던 곳이다.
보르비콩트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퐁텐블로성은 중세 봉건시대부터 나폴레옹 3세 때까지 왕족들의 사냥터이자 별궁으로 쓰였던 곳이다. 보르비콩트성과 같은 정원 외에도 자연형 연못과 수림 등이 한 편에 있어 산책하기 좋다. 퐁텐블로성의 황금색 문 안에 들어서면 만나는 광장은 나폴레옹이 폐위돼 엘바섬으로 유배되기 전 근위병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이별의 광장’으로 불린다. 성 앞에의 계단은 고전 영화에 나오는 말발굽 형태의 계단이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곳이기에 성 내부엔 나폴레옹과 관련한 전시품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성에 딸린 정원은 아니지만,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도 빼놓을 수 없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70㎞ 떨어져 있는 지베르니는 인상파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가 무명 시절부터 작품 활동을 한 마을이다. 모네는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이곳에서 ‘수련’, ‘루앙 대성당’, ‘포플러’ 등의 작품을 남겼다. 모네가 숨을 거둔 자택 2층 끝방에선 자택 앞에 아름답게 꽃들이 핀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집안 곳곳엔 모네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일본 그림들이 걸려 있다. 
모네의 작품 ‘수련’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인상파의 거장 클로드 모네는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생애를 마쳤는데, 오늘날에는 프랑스 국립기념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원에서 나와 반대편 연못엔 물까지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와 빽빽이 들어찬 대나무, 일본풍의 다리, 수련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고개를 돌려도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본 모네의 작품이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왕실이나 귀족의 정원이 인공미가 강하다면, 모네의 정원은 인공미를 느끼기 힘들다.

대중교통으로 파리 외곽에 떨어진 궁전과 정원을 보러가기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자유여행 플랫폼 클룩 등에서는 개인적으로 가기 힘든 몽생미셸, 보르비콩트성, 지베르니 등을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투어프로그램을 판매한다. 취향에 맞는 여행지를 선택해 수월하게 파리 외곽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몽생미셸·일드프랑스=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