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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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두발 자유화

1980년대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등굣길 교문 앞에서 앞머리가 규정보다 조금 길다는 이유로 단속에 적발됐다. 생활지도 교사는 바리캉(이발기)으로 앞머리부터 사정없이 한 줄로 밀어 버렸다. 머리 위에 고속도로가 난 꼴이라 흉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창피했다. 차라리 머리를 다 밀어 달라고 대들었다. 돌아온 건 군밤세례였다. 하교 후 모자를 쓴 채 이발소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 요구는 1990년대 간헐적으로 나오다 2000년대 초반에 크게 분출됐다. 2000년 청소년 단체인 ‘위드’는 ‘노컷운동’을 벌였다. 두발 규제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이다. 10만명 이상이 참여하면서 학생인권 문제가 표면화하는 계기가 됐다. 같은 해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어 “두발 규제는 학생인권 침해”라고 소리쳤다.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깜짝 놀란 교육부는 각 학교에 ‘새로운 두발·교복 규칙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2005년만 해도 중학교 92.6%와 고등학교 91.1%에서 두발 규제가 존재했다.

내년 2학기부터 서울 중·고등학생 두발 규제가 사실상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그제 기자회견을 열어 ‘두발 자유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각 학교에 자체 공론화를 거쳐 내년 1학기 내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고 2학기부터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머리카락 길이 규제는 반드시 없애고 파마나 염색도 제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우리나라만큼 머리 때문에 갈등을 빚는 나라가 또 있을까. 획일적인 용모 규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생활지도 문제를 놓고 일부 교사와 학부모의 한숨 소리가 들리지만 이제는 물꼬를 터 줄 때가 됐다. 방탄소년단이 세계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시대에 사는 만큼 어린 학생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키워 주는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두발 자유화도 교육감의 발표보다는 학교 자율에 맡겼으면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