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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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쌀값 폭등

숙종 때 ‘4년 대흉년’이 들었다. “흉작에 영남과 해서에서는 하루 수십 명씩 죽어 나갔다”고 했다. 수십 명뿐이었을까. 그것은 축소한 보고 수치일 뿐이다. 4년째 되던 숙종 24년, 1698년 청 건륭제는 쌀을 보냈다.

‘청사고’에 남은 글. “쌀 3만석을 조선에 보냈는데, 1만석은 진제용(賑濟用), 2만석은 쌀값 안정을 위한 것이다.” 진제용이란 구휼미다. 상평통보 유통에 애를 쓴 숙종. 2만석을 폭등하는 쌀값 잡기에 쓰라고 했다면 쌀값은 이미 민생 안정을 재는 척도로 등장했다는 뜻이다.

병자호란 62년 뒤의 일이다. 반청(反淸) 정서는 그때도 남아 있었다. 유림 정호가 숙종에게 한 말, “아무리 기근을 당했기로서니 어찌 가볍게 (청에) 하소연해 약함을 드러내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옵니까.” 강희제는 청의 전성기를 연 황제다. 먹을 것이 넘치는 청, 기근에 허덕인 조선. 그래도 명에 대한 사대(事大)에 젖은 유생은 반청 주장만 늘어놓았다.

쌀값이 뛰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26.4% 올랐다. 오름세는 멈출 줄 모른다. 상반기 80㎏ 한 가마에 17만7000원. 지금 시장에서 팔리는 햅쌀 소매가격은 27만원대에 이른다. 지난해 9월 20㎏ 한 포대에 3만8000원대이던 쌀 도매가격은 4만6000원대, 소매가격은 5만~6만원에 달했다. 품질 좋은 쌀은 8만원을 웃돈다. 37년 만의 폭등이다.

숙종의 시대였다면? 분명 난리가 났을 게다. 지금은 다르다. 다른 산업이 버티니 모자라면 사오면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을까. 쌀을 상대적으로 많이 소비하는 도시 서민은 울상을 짓는다. 소득이 줄어든 판에 쌀마저 비싸게 사먹어야 하니. 다른 물가도 덩달아 뛴다. 웃음 짓는 쪽은 농민과 농업법인이다.

쌀값은 왜 뛰는 걸까. 올해 쌀 생산량 397만t. 400만t을 밑돌기는 사상 처음이다. “이제 쌀을 먹지 않는다. 생산량을 줄이라”고 목청을 높인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할까. ‘높은 쌀값’ 정책도 한몫한다. 쌀값이 뛰는 와중에도 정부는 9월 중순 쌀 35만t을 공공비축미로 사들이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쌀값은 더 뛸 수밖에 없다. 뛰는 폭이 집값보다 더하다. 정상인가, 실정인가.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