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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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수술실 CCTV

수술실에서 간혹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최근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수술받은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 누구 잘못인지 파악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수술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런데 담당 의사는 구속적부심에서 ‘혐의를 인정한다’는 이유로 풀려난 후 진료를 재개했다. 울산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에게 요실금 수술 등 모두 721건의 수술을 지시한 여성병원 원장이 적발됐다. 대리수술은 수십년간 이어져 온 의료계의 고질적 병폐다.

2014년 말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수술대에 놓고 생일파티를 하는 사진이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이 병원 간호조무사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엔 의료진이 케이크를 주고받으며 웃고, 가슴 보형물을 들고 장난치고, 돈을 세고,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엔 기증받은 해부용 시체를 두고 의사들이 SNS에 인증 사진을 올리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의료사고와 환자인권 침해가 잇따르면서 수술과정 확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경기도가 1일부터 안성병원 수술실에 폐쇄회로TV(CCTV)를 가동했다. 전국 최초다. 경기도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91%가 CCTV 설치에 찬성했다. 환자나 가족 동의가 있어야 하고, 수술 영상은 한 달 동안 보관된다. "권리 보호를 받는 기분이다.” 환자들 반응이 좋자 내년에는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한의사협회에 ‘끝장 토론’을 제안했다.

의사협회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인권침해 행위”라며 반발했다. 겉으로는 환자 프라이버시 침해, 의료행위 위축을 내세우지만 공연히 수술 장면을 녹화해 자기 발등을 찍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속마음일 게다.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들은 절대 약자다. 변호사를 사더라도 증거 확보가 어려워 승소할 확률이 낮다. 큰 수술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혹시 모를 의료사고에 대비해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의사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