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10년간 출근도장만 찍고 연봉 '꿀꺽'… 부패 공무원과의 전쟁 [세계는 지금]

각국, 무능·부패 공무원과 전쟁중 / ‘안정적 직업’ 인기에도 세계 곳곳 물의 / 英선 화재참사 생존자 지원금 가로채 / 싱가포르, 높은 대우 불구 성접대 받아 / 필리핀 대통령 측근·고위직 대거 해임 / 캐나다, 비위·무능으로 해고 급증 추세 / 中 대대적 감찰 1089명 적발 징계·처벌 / 케냐, 조사위해 거짓말 탐지기도 동원 / 중국 안면인식 CCTV 2000만대 설치 / 터키선 안보이유 1만 8000명 무더기 해고 / 반정부 행위 막는 도구로 이용 우려도
다양한 변수가 경제 상황에 영향을 미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식되는 공무원에 대한 각국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공무원에겐 ‘철밥통’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웬만해선 잘리지 않아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인식도 강하기 때문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도 많지만, 무능·부패 공무원들로 인해 자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직업이기도 하다.

세계가 무능·부패 공무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무원들의 횡령, 뇌물 수수, 성 접대 등의 비위가 끊이질 않으면서 각국은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공무원들의 비위에는 가차 없이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지구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6월 71명이 목숨을 잃은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의 생존자 지원금을 가로챈 공무원이 적발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런던 켄싱턴과 첼시 자치구에서 재정담당자로 근무하던 제니 맥도나는 참사 이후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생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선불카드에 손을 대 17차례에 걸쳐 6만2062파운드(약 9200만원)를 유용한 사실이 밝혀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5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돈을 해외여행과 미용, 외식 등에 사용했다.

‘강력한 법치국가’ 싱가포르는 공직자의 비리 조사를 위해 검찰·경찰과는 별도의 수사기관인 ‘탐오조사국’(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CPIB)을 운영하는 한편,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지 않도록 세계 최고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지만 부정·부패 사건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었다. 지난달 27일에는 중국 여성들로부터 성 접대를 받고 비자를 연장해준 이민국(ICA) 공무원이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스페인에서는 연봉 5만유로(약 6500만원)를 받으면서도 10년간 단 하루도 근무하지 않은 공무원이 발각돼 1년여 전 파면됐다. 유로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페인 발렌시아시의 법원 기록보관소 공무원이었던 카를레스 레시오는 오전 7시30분에 일터로 가 출근부를 작성하고 곧바로 다시 나간 뒤, 오후 4시에 다시 들러 퇴근부만 쓰고 귀가하는 생활을 10년간 반복했다. 공권력에 무능·부패가 더해지며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충격은 그만큼 컸다. 세계의 정부들도 무능·부패 공무원들을 향해 칼을 빼 들기 시작했다.

◆치솟는 인기 직업 ‘공무원’

중·고교 졸업 후 취업하고 싶은 직업 1위에 공무원이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 아닌 독일 얘기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시장 조사업체 트렌덴스가 매년 독일 중·고교생(8∼13학년) 2만명을 대상으로 졸업 후 가고 싶은 직종과 기업 등을 물어보는 ‘학생지표’의 2017년 1∼6월 설문조사 결과에서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응답이 1위(24%)로 나타났다. 공무원이 1위에 오른 것은 조사 시행 이래 처음이다. 안정성을 선호하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그동안 1위를 차지하던 자동차 업체는 ‘디젤 게이트’로 불리는 배출가스 조작 파문 등의 여파로 21%를 기록해 2위로 밀렸다.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식되는 공무원이 세계적으로 인기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도 최근 경제성장률 저하로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치러진 공무원 채용시험인 궈카오에는 1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2016년 98만4000명에서 10만명 이상 늘어난 수치로,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역사적으로 두 번째다. 시험의 평균경쟁률은 39대 1이었다.

◆세계는 무능·부패 공무원과의 전쟁 중

“그들이 다시 뇌물을 요구하면 내가 죽일 것이다.” 언행이 거칠고 과격하기로 유명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해 부패 공무원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약속하며 엄포를 놨다. 그는 “설명되지 않는 부는 설명되지 않는 죽음과 같은 뜻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필리핀에서는 경찰이나 자경단이 마약 용의자들을 초법적으로 ‘묻지마’ 사살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던 터라, 부패 공무원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 발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부패를 저지른 측근과 고위직 공무원 해임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4월에는 호주산 소방차의 도입 비리 의혹과 관련해 측근인 이스마엘 수에노 내무장관을 해임했으며, 올해 초에는 불필요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마르시알 아마로 해양산업청장을 내보냈다.

공산당 일당이 주도하는 중국도 공무원의 무능·부패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신경보에 따르면 중국 사정·감찰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승진한 공직자 중 부패가 드러난 공무원 4075명의 임용과정을 역조사해 관련 간부 책임자 682명을 처벌했다. 중앙기율위는 부패 행위에 연루된 1만1000여명에 대해 임용·승진을 취소하고, 간부 후보 자격을 연기했다. 전국적으로 부처급(副處級·과장급 상당) 이상 배우자 5000명 중 남편 직장과 연관된 근무지에 일하는 1300명을 다른 근무지로 이동시키고, 지도 간부들의 사적인 해외출국 여부를 조사해 기율위반자 3만5000여명을 처벌했다.

같은 해 중국 국무원(내각)은 리커창 총리 지시로 공무원에 대한 대대적 감찰을 실시해 공무원의 117가지 문제 행위를 가려내고 ‘나태·태만·저속’ 등의 행태를 보인 공무원 1089명을 적발해 처벌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발생한 ‘불량 백신’ 파문 당시에도 백신 제조업체의 관리·감독을 맡은 중앙 및 지방 공무원까지 사건 연루 및 업무소홀로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복지 국가’ 캐나다라고 해서 헐렁헐렁하진 않다. 캐나다 CBC방송은 지난 7월 정부 내부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05-06 회계연도와 2015-16 회계연도 사이 비위 726명, 무능 590명 등 총 1316명의 정규직 공무원이 해고됐다고 밝혔다. 비위와 무능으로 수습 기간 중 채용이 취소된 경우도 862명에 이른다.

캐나다 전체 정규직 공무원은 총 26만여명으로 해고자의 비율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비위를 저지르거나 업무에 무능한 이유로 해고되는 공무원은 급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CBC는 설명했다. 비위로 해고된 공무원은 2005-06 회계연도 55명에서 2015-16 회계연도 92명으로 67% 증가했고, 같은 기간 무능으로 해고된 공무원은 49명에서 77명으로 57% 늘어났다.

◆무능·부패 적발 위해 첨단기술 동원… 우려 목소리도

중국 중부 허난성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관료·공무원의 부패 행위를 적발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중국 관영 환추스바오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5월 허난성이 빅데이터를 이용해 관료·공무원의 사회적 관계지도를 만들어 잠재적인 기율 위반을 정확히 가려낼 방침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허난성 동부 화이양현은 빅데이터 센터를 설립해 인구통계·가구등록·부동산·차량·관료의 친지 자료·극빈 가정 관련 정보 등을 수집하고, 관료·공무원의 사회관계 지도를 그려 기율을 위반하는 관료를 적발한다고 허난성 기율검사감찰위원회는 설명한다.

케냐 정부는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고 나섰다. 케냐 일간 데일리 네이션에 따르면 지난 5월 고위급 공무원 수십명을 포함해 54명의 공무원이 800만달러(약 90억원) 규모의 공금횡령 혐의로 적발되자,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은 이들 공무원의 능력과 자질 검증을 위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포함한 신상 조사를 새로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른 사생활 침해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도시 지역에 인공지능 안면인식 CCTV 2000만대를 설치한 데 이어, 2020년까지 전국에 설치된 2억대의 CCTV를 단일망으로 묶는 사업을 추진 중인 중국에서는 빅데이터 활용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빅브라더 사회’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정·부패 공무원 적발을 명분으로 반정부 인사들을 추려내는 일이 자행되는 등 오용·남용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7월8일 터키 당국은 6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취임식을 하루 앞두고 경찰·군인 등 공무원 1만8000여명을 무더기 해고했다. 당국은 해고 이유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 조직 및 단체와의 연계 의혹을 거론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정부는 이미 2016년 군부 쿠데타를 진압한 뒤 11만명 이상의 공공분야 종사자들을 해고하고 수만명을 정직시킨 전력이 있는 만큼, 이러한 공무원 대량해고는 당시 국가비상사태 해제를 앞두고 반정부 성향 인사들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