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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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4·27과 9·19, 달라진 풍경

9·19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레스센터와 5개월 전 4·27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한 일산 킨텍스 프레스센터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4·27 때는 모두가 들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포옹하고, 그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이 생중계되자 내·외신을 가리지 않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기립박수를 치는 이도 있었다. 10년 가까이 높아지기만 했던 북핵 위기로 피로감에 싸여 있다가 모처럼 ‘새로운 그림’을 만난 것이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9·19 프레스센터는 훨씬 차분했다. 내·외신의 합동 탄성 같은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방남하면 한라산에 가냐”는 러시아 기자의 질문이 있었지만 백두산, 아리랑, 평양냉면 등은 대체로 ‘내신용’이었다. 가볼 수 없는 천지를 교과서에서, 애국가 방송에서 매일 접하면서 살아온 우리와 외부인들의 감동이 같을 수는 없었다. 외신 질문은 주로 ‘경제인들의 동행 이유’, ‘비핵화보다 남북관계가 앞서간다는 우려’ 등에 집중됐다. 대북제재를 의식한 질문들이다. 4·27 당시 1000여명이었던 등록 외신기자 수도 465명으로 줄었다.

이미 세 번째니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요구는 훨씬 많아졌다. 협상 당사자인 미국 워싱턴 주류 여론은 더 그렇다. 4·3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반도 문제 관련 미국 내부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온 더네이션 기자 팀 셔록은 프레스센터 토론회에서 “워싱턴은 한목소리가 아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방산업체 지원을 받는 보수 싱크탱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싫어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두 나름의 이유로 협상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며 연일 장밋빛 트윗을 날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편이 워싱턴에 거의 없다는 말이다. 오바마 행정부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에이브러햄 덴마크 우드로윌슨센터 동아시아국장은 기자가 북·미 회담 전망을 묻자 “중간선거 전에 김정은이 캐피톨(의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볼지도 모르지. 그래서?”라고 시니컬하게 답했다.

바깥의 시각은 주로 “너무 빨리는 안 돼(not so fast)”다. 한 전문가는 “올 초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은 이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제 조금씩 이론과 관측의 영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평했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미협상의 부속물이 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은 통일을 지향하는 지도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생각이다. 하지만 동시에 외부 시각을 그대로 냉철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정권 빼앗겨 11년간 남북관계 손실’이라는 여당 대표의 말, 인권 유린 요소가 있는 북한 집단체조에 주요 인사들이 무비판적으로 ‘대단하다’, ‘뭉클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 등은 냉정함을 유지하는 태도가 아니다. 중차대한 시기에 소모적인 남남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과 함께 협상 2라운드가 시작됐다. 첫 라운드가 그랬듯 2라운드도 삐걱댈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밝힌 비핵화 시한이 2021년 1월이고 그 사이에, 어쩌면 그 이후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벌써 흥분하면 진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