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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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70세 정년

관악산 남쪽 능선을 오르면 큰 바위가 나온다. 누군가 바위에 이름을 붙여 놓았다. ‘경명(鏡明)’. 거울이 맑다는 뜻이다. 그 바위에 앉을 때마다 생각했다. “왜 명경이라 하지 않았을까.” 육조대사 혜능, “깨달음은 애초 심은 것이 아니며/ ‘맑은 거울’은 받침이 아니어라/ 본디 일물(一物)조차 없거늘/ 어디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맑은 거울은 명경(明鏡)이다. 명(明)을 수식어로 쓰면 명경이요, 서술어로 쓰면 경명이다.

진달래가 만발한 몇 해 전 봄날, 아들은 80대 노모를 등에 업고 바위 아래까지 올라왔다. “참 아름답기도 해라.” 늙은 어머니는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이다. 아들은 노모를 업어 진달래 아래 양지바른 곳에 앉혔다.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시린 광경이다.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등에 업혀 산에 오를 즈음에는 일손을 놓고 자식을 기둥으로 삼는다. 정년? 본래의 정년은 그런 것이 아닐까. 분업화한 오늘날에는 다르다. 일할 나이를 숫자로 못 박는다. 정년 60세. 그 숫자를 넘기면 노년 딱지가 붙는다.

그런 정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65세 정년도 빠르다고 생각하는지 의무고용 연령을 70세로 높인다고 한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의장인 미래투자회의가 법률 개정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축복일까, 재앙일까. 공적연금을 받는 나이도 70세로 늘린다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다. 하지만 역동적인 일본을 보게 된다. “노인도 일을 해 달라”고 외치는 일본 정부. 이면에는 ‘경제 기관차’가 달리고 있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을 칠 정도로 일본경제는 호황이다.

우리는? 딴판이다. 실업자, 반(半)실업자를 합쳐 백수 340만명 시대.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한숨을 짓는다. 노인도 일을 해 달라? 그것은 바다 건너 이야기다. 세대갈등마저 인다. 노인 무임승차를 두고 “왜 공짜로 태우느냐”고 한다. 적자를 내세워 “무임승차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난파선으로 변하는 경제, 갈등이 들끓는다. 실정(失政)은 양속(良俗)마저 잡아먹는 괴물이다.

자식 등에 업힌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들. 그래서 더욱 미안해하는 것은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