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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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부르고뉴 마을단위 피노누아 왜 턱없이 비쌀까

미국 ‘산타마리아 와인의 어머니’ 비엔나시도
최상급 피노누아 배양 성공 미국 와이너리에 공급
씨네 쿼 넌 등 유명 컬트와인 탄생 디딤돌


산타 마리아 밸리 위치.
최고급 피노 누아 와인이 생산되는 프랑스 부르고뉴는 모든 포도밭에 등급이 매겨져 있답니다. 그만큼 매우 철저하고 세밀하게 포도밭의 품질을 관리한다는 얘기죠. 레지오날, 꼬뮌, 프리미에 크뤼(1er Cru), 그랑크뤼(Grand Cru) 등 4단계로 나뉘는데 가장 등급이 낮은 레지오날이 제일 넓은 면적인 52%를 차지하며 24개 지역으로 나뉩니다. 이어 쥬브레 샹베르땡, 샤샤뉴, 몽라셰 등으로 불리는 등 꼬뮌(마을) 단위 포도밭이 37%를 차지하며 꼬뮌은 44개입니다. 이 꼬뮌의 포도밭은 위치에 따라 프리미에 크뤼(9.6%·600여개) 또는 그랑크뤼(1.4%·33개)로 분리됩니다. 와인 병에 ‘쥬브레 샹베르땡 1er Les Cazetiers’라고 적혀 있으면 꼬뮌 단위 쥬브레 샹베르땡 마을의 프리미에 크뤼급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이고 구체적인 포도밭 이름은 ‘레 까제티에’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랑크뤼급은 이처럼 면적이 적은만큼 생산량도 얼마안돼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Bien Nacido 와이너리 전경.
부르고뉴처럼 1%에 불과한 최상급 포도로 와인을 빚는 곳이 미국 캘리포니아에도 있는데 ‘미국 포도의 어머니’로 불리는 비엔 나시도(Bien Nacido)랍니다. 이 와이너리는 최고급 와인들이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센트럴 코스트 산타바바라 카운티의 산타마리아에서 와인을 생산합니다. 산타마리아 밸리(Santamaria Valley)는 미국 전역에서 미조리(Missouri), 나파 밸리(Napa Valley)에 이어 3번째 AVA(미국 포도재배 지역 명칭)로 지정된 곳일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생산지랍니다. 
Miller 패밀리. 오른쪽 부터 Stephen, Nicolas, Ladine
역사는 이 지역이 멕시코령이던 18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토마스 올리베라가 국가에서 토지를 매입해 이중 일부 구획인 란초 테푸스케(Rancho Tepusquet)를 사위인 돈 후안에 팔았고 이들 부부는 1857년부터 포도밭을 일구기 시작합니다. 이런 오랜 역사를 지닌 포도밭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들이 현재 비엔 나시도를 만든 밀러(Miller) 패밀리입니다. 이들은 1969년 포도밭을 인수, UC 데이비스에서 떼루아별로 가장 적합한 포도품종 클론을 공급받아 비엔 나시도 포도밭에서 배양을 시작했는데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과 태평양의 안개가 서늘한 기후를 유지해주면서 당시만해도 볼 수 없었던 최상급 피노 누아, 시라, 샤르도네가 탄생합니다.
이에 캘리포니아 전 지역의 유명한 와인메이커들이 앞다퉈 비엔 나시도에서도 포도를 공급받기 시작해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비엔 나시도의 묘목이 퍼저나갑니다. 따라서 현재 미국 와인에 사용되는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의 대부분 비엔 나시도에서 재배한 묘목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그중에는 미국 최고급 와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컬트 와인 생산자 씨네 쿼 넌(Sine Qua Non), 오봉 끌리마(Au Bon Climat), 채닌(Chanin) 등 기라성 같은 와이너리들도 포함돼 있답니다.
Solomon Hills 포도밭 풍경
밀러 패밀리는 1990년 후반 이곳에서 솔로몬 힐스(Solomon Hills)도 세웠으며 두 와이너리는 산타 마리아 밸리 와인 생산량의 20%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체 포도밭에서 가장 좋은 1% 구역만 별도로 선별, 비엔 나시도·솔로몬 힐스 에스테이트(Estate) 피노 누아, 시라, 샤르도네 와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와인은 화학 비료 등을 쓰지 않는 유기농과 바이오디나믹으로 생산하고 특히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병입돼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발전하는 매력을 보입니다. 
마스터 소믈리에 윌 코스텔로(Will Costello)
전세계에 149명에 불과한 마스터 소믈리에 윌 코스텔로(Will Costello)가 최근 한국을 찾았습니다. 미국 라스베가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트위스트 바이 피에르 가니에르(Twist by Pierre Ganaire)에서 와인 관련 총책임자로 활약하는 그는 비엔나시도와 솔로몬 힐스의 브랜드 매니저도 겸하고 있습니다. 비엔나시도와 솔로몬힐스 와인은 WS통상을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입되며 윌 코스텔로와 함께 대표와인 5종을 시음했습니다.
비엔 나시도 에스테이트 샤도네이.
비엔 나시도 에스테이트 샤도네이(Bien Nacido Estate Chardonnay) 2016은 프랑스 부르고뉴 꼬뮌 단위 최고급 샤도네이 와인 샤사뉴 몽라셰나 퓔리니 몽라셰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1973년에 심은 사도네이를 18개월동안 프렌치 오크에서 효모찌꺼기와 함께 숙성하는 쉬르리(Surlees)를 진행해 입안에 효모풍미가 잘 전달되는 밀도 높은 볼륨감이 돋보입니다. 레몬 등 시트러스 과일향과, 카모마일 등의 허브, 잘 숙성된 샤도네이에서 느껴지는 볏짚향도 뿜어져 나옵니다. 251케이스만 소량 생산됐습니다.
솔로몬 힐스 에스테이트 샤르도네
솔로몬 힐스 에스테이트 샤르도네(Solomon Hills Estate Chardonnay) 2016은 16개월 간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과 쉬르리를 거치며 레몬 버베나 등 이국적인 허브 향과 젖은 바위 미네랄, 풍성한 질감이 돋보이는 프랑스 샤블리 프리미에크리 수준의 와인입니다. 1999년에 심은 샤도네이로 165 케이스만 생산됐습니다. 솔로몬 힐스는 비엔나시도보다 태평양에 더 가까운 곳으로 서늘한 해양성 기후 덕분에 비엔나시도보다 샤프한 스타일로 신선하며 미네랄이 도드라집니다.
비엔 나시도 에스테이트 피노 누아
비엔 나시도 에스테이트 피노 누아(Bien Nacido Estate Pinot Noir) 2014는 잘 익은 과일 풍미가 느껴지는 라운드한 와인으로 부르고뉴 꼬뮌 단위 뉘 생 조르지와 흡사합니다. 18개월 간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하며 484 케이스만 생산됐습니다. 스파이시한 블랙 티와 프로방스의 허브 풍미, 레드 베리 등 붉은 과일과 검은 과일 향이 넘쳐나며 은은하게 로스팅된 에스프레소, 장미, 크렌베리 소스, 다크쵸콜릿, 후추, 카르다몬 향등 어우리지는 복합미가 뛰어난 피노누아입니다. 
솔로몬 힐스 에스테이트 피노 누아(Solomon Hills Estate Pinot Noir) 2014는 18개월 간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33%만 새 오크통)하며 1999년에 심은 피노 누아로 316케이스만 생산됐습니다. 세이보리(Savory), 흙냄새가 어우러져 마치 부르고뉴 꼬뮌 쥬브레 샹베르탱을 떠올리게 합니다. 으깬 후추 등 향신료가 풍부하고 삼나무, 레드베리, 블루베리, 펜넬, 시나몬 등의 복합적인 풍미가 묵직하게 이어집니다.
비엔 나시도 에스테이트 시라(오른쪽)
비엔 나시도 에스테이트 시라(Bien Nacido Estate Syrah) 2014는 프랑스 북부 론 생 조셉 스타일로 시라 96%에 비오니에 4%를 섞었습니다. 바이올렛 등 이국적인 꽃 향기와 푸른 과일, 으깬 통후추, 말린 꽃, 까시스의 향이 진하게 풍기며 길게 여운이 이어지는 피니시가 돋보입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