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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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질책·개혁 실망… “조직이 한심” 자조 [경제 톡톡]

더 움츠러든 금감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2일 취임 후 첫 국정감사를 치렀습니다. 첫 무대가 대개 그렇듯 호된 신고식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의원들의 질의에 시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 있고 시원한 답변보다 수세적이고 아쉬운 답변이 많았습니다.

그런 모습에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 임원들을 질책했습니다. “간부들이 원장을 물먹이는 것 같다. 개혁적 원장이 왔다고 사보타지(태업) 하는 거냐”고. 원장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다는 질책이었습니다.
류순열 선임기자

민병두 정무위원장도 윤 원장이 안쓰러웠는지 “팁을 드리겠다”라며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같은 순응적인 답변이 많은데 의원들이 꼭 그런 답변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논쟁적일 필요가 있고 그런 모습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이래저래 윤 원장은 곤혹스러운 하루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로 끝이 아닙니다. 이후 금감원 내부 기류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직원 A씨는 “간부들이 원장을 (왕)따시킨 거 아닌가”라고, 고참급 직원 B씨는 “갈수록 조직이 한심해진다. 명운을 다해 가는 것 같다”고 푸념했습니다.

원장을 ‘물’먹이려고 작정한 간부는 아마 없을 겁니다. 윤 원장만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도 아닙니다. 역대 원장들도 대개 첫 국감은 그랬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번엔 전과 다르게 국감 여진이 금감원을 흔듭니다. 왜일까요.

개혁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금감원은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금감원 감독기능은 쪼그라들고 “우리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늘던 터였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문재인정부의 공약, ‘정책과 감독을 분리하는 금융감독시스템 개편’은 사실상 물건너갔습니다. 윤 원장 취임 후 ‘종합검사’가 부활하기는 했으나 민간조직인 금감원이 정부인 금융위의 지휘·감독을 받는 수직적 이원화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와중에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은 조직 확대에 나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느닷없는 말 한마디로 생겨났다는 그 ‘자조단’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가 뭐 잘한 게 있어야 무슨 얘기라도 하지”라고 푸념했습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낮기만 합니다. 금감원은 3년째 채용비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노조는 15일 성명서를 통해 철저한 반성과 사과, 피해자 특별채용을 촉구했습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