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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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김정일 체제와 김정은 체제의 차이

최악 고립 겪은 아버지와 달리/아들은 개방형 지도자상 부각/北 변화 주관적 해석땐 부작용/정부, 통일전략 근본적 고민을
지난 9월 문재인정부의 3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놓고 보수와 진보 간의 논쟁이 치열하다. 지난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비핵화 논란에 대한 논쟁도 세계적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문재인정부와 진보세력은 “새로운 한반도 평화시대가 도래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했다. 북한 사람들의 태도·생활 등이 많이 변화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변화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향후 우리의 외교 안보전략과 대북정책에 심각한 혼란과 후유증을 낳게 될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체제와 김정은 체제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김정일 체제의 공포정치, 최악 경제난, 선군정치, 어두운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김정은 체제는 김여정, 리설주의 등장 등으로 상징되는 소프트파워정치, 400만 명 가까운 휴대전화 사용자로 상징되는 북한 사회경제 생활상의 변화,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선언과 경제건설 집중노선의 선포,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과시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개방형 지도자의 이미지 등은 북한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문 대통령은 12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예의 바르고 솔직 담백하면서 겸손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했고, 이미 보유 중인 60여 개의 핵탄두의 처리방안에 대한 질문에는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 핵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같은 평가는 북한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이해와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인다. 현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핵 국가 북한의 등장이다. 지난해 가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성공은 동북아 정세의 ‘게임체인저’(판도나 흐름을 바꿔 놓는 사람이나 현상)가 됐고, 그 이후 동북아정세는 북한주도로 대변동이 이뤄지고 있는 국면이다. 북한의 지난 약 30년 동안의 핵 국가전략을 총결산·총화한 문서인 4월 20일 노동당 7기 3차 중앙위 결정서는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 핵무장국가의 완성, 이에 따라 더 이상 필요 없는 핵·미사일 실험의 모라토리엄 선언, 책임 있는 핵 국가 입장에서 핵 군축 차원의 비핵화 협상을 추진할 것임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북한의 공식적 주장과도 괴리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 국가의 지위를 지렛대로 북한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올해 신년사에서 통일을 열 두 번이나 언급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새로운 대남 개입전략을 보여주면서 한반도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결국 김정일 체제와 김정은 체제의 핵심적인 차이점을 현상적으로 보이는 사회경제 생활상의 변화와 소프트파워 정치의 부상 등을 중심으로 해석하게 되면 본질적 문제점을 놓치게 될 것이다. 김정일 체제와 김정은 체제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김정일 체제가 최악의 고립과 경제난 속에서 체제수호를 위한 핵무장국가 전략, 즉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했다면, 김정은 체제는 핵보유와 친미비중(親美非中)국가로의 전환을 지렛대로 북한주도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신베트남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과장·홍보해주고 있는 것은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한 나이브(순진)한 인식, 북한의 국가전략에 대한 인식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ICBM과 그와 연관된 핵위협의 우선적 제거, 북한의 친미비중 국가화 등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핵 국가, 전략국가의 지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북한주도 한반도 통일이라는 자신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우리 자신의 국익이 무엇이고, 국가전략과 통일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