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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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화산에서 ‘우아한 꽃’으로 핀 네렐로 마스칼레제

부르고뉴 피노누아처럼 우아하고 바롤로처럼 힘을 지녀

인간 간섭 배제 자연주의로 빚는 프랭크 코넬리센

 

 

에트나 화산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에트나 위치

가을 바람을 따라 코끝으로 묻어오는 우아한 향수..... 은은하면서도 길게 이어지며 여운을 남기는 여인의 향기. 미소 짓는 얼굴은 지중해에 쏟아지는 햇살처럼 밝고 맑으며 그녀의 언어는 달콤하게 나를 휘감는다. 어느날 스치듯 지나 간 그녀처럼. 본 로마네, 샹볼 뮈지니, 샹베르탱 같은 프랑스 부르고뉴 마을단위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피노 누아 같은.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와인의 왕’ 바롤로 같기도 한 매력은 황홀한 무아지경으로 이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북동쪽 에트나 화산지대. 지금도 불을 뿜는 활화산 에트나는 해발고도 3327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화산으로 지질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에트나 주변에는 독특한 토착 포도 품종이 자랍니다. 바로 고대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인데 지난 10년동안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화산토양으로 이뤄진 에트나 주변 프랭크 코넬리센 포도밭

에트나 주변 땅은 화산토양으로 포도나무 뿌리를 병들게 하는 필록세라가 살수없답니다. 따라서 필록세라에 강한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를 접목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포도나무로 존재하죠. 또 배수가 잘 되고 미네랄이 풍부해 포도나무가 몇 세기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100년이 넘은 올드바인들이 잘 자라고 있답니다. 더구나 포도밭의 해발고도가 700∼800m로 매우 높아 산도가 좋고 우아한 와인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특히 에트나 화산 북쪽 밸리는 대륙성 기후로 건조하고, 바람이 잘 통하고 일조량도 좋아 최상급 포도밭들이 몰려 있습니다. 조금만 떨어진 포도밭도 서로 기후가 달라지는 미세 기후여서 포도밭은 다양한 특성도 지니고 있답니다. 

 

 

프랭크 코넬리센
프랭크 코넬리센 마그마

이곳에서 인간의 간섭을 최대한 절제하며 네렐로 마스칼레제 품종의 특성과 떼루아를 고스란히 한잔의 와인에 담는 자연주의 생산자가 있습니다. 프랭크 코넬리센(Frank Cornelissen)입니다. 플래그십 와인 마그마(Magma)는 네렐로 마스칼레제 100%로 와인으로 해발고도 910m의 싱글빈야드 바르바베끼(Barbabecchi)에서 자라는 110년 수령의 포도나무를 사용합니다. 올드바인은 포도의 집중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포도송이가 아주 적게 열려요. 그런데도 프랭크 코넬리센은 포도의 응집력을 더욱 높이려 포도 송이를 줄이는 가지치기까지 하기 때문에 한그루에 포도는 단 300g만 얻어지며 연간 1300병만 생산되는 귀한 와인이죠. 

 

 

화산토에 묻은 앙포라

독특한 점은 껍질째 담가 맛과 향을 우려내는 과정인 스킨 컨텍을 부르고뉴 생산자들은 보통 2주에 끝내는데 프랭크 코넬리센은 한달에서 두달까지도 진행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하면 껍질에 있는 탄닌과 영양소를 최대한 추출하고 와인의 복합미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또 바닐라와 토스트 향 등을 넣기 위해 많은 생산자가 쓰는 새 오크통을 절대 사용하지 않고 여러해 동안 사용해 오크향이 포도에 전혀 스며들지 않는 중성적인 큰 나무통 뱃(Vat)에서 발효와 숙성을 모두 마칩니다. 예전에는 아예 나무통을 쓰지않고 점토로 구운 항아리 앙포라에 와인을 담아 화산토에 묻은 상태로 숙성했을 정도로 인공적인 간섭을 완전히 배제하는 양조법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많은 와인 생산자들은 원하는 스타일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 수확과 양조 과정에서 이산화황(So2)을 사용해 포도 껍질에 묻어있는 자연효모를 모두 죽이고 연구소에서 인공배양한 특정 효모를 골라서 씁니다. 그러나 프랭크 코넬리센은 So2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 효모만 쓰며 심지어 와인을 병입할때 불순물 정제과정도 전혀 거치지 않고 그대로 담습니다. 이때문에 맛을 보면 기존 와인과는 전혀 다른 내추럴 와인과 비슷한데 마그마는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 허브향, 미네랄, 흙내음 등이 특징입니다.

 

 

한국을 찾은 프랭크 코넬리센

프랭크 코넬리센 와인은 크리스탈와인에서 수입합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프랭크 코넬리센을 WSA와인아카데미 세미나에서 만났습니다. 그의 대표 와인들 시음하며 진정한 자연주의 와인은 과연 무엇인지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는 내추럴 와인이라는 단어조차 거부합니다. “오가닉(Organic)이나 비오다이나믹(Biodynamic) 조차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양조 방법이죠. 따라서는 저는 이런 와인 양조에 구애받지 않아요. 위대한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빈티지와 떼루아 그리고 그 지역 정서를 잘 담아야한다고 생각하죠”. 포도나무는 해발고도 600∼1000m에서 자라는데 22ha중 13ha는 올드바인입니다. 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덤블 같은 부시바인(Bush Vine) 형태로 키웁니다. 

 

 

이런 양조를 고집하는 것은 포도 수확과 양조 전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토양의 특징과 기후 등 떼루아를 100% 반영하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인간이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은 와인이 탄생할 수 있다는 프랭크 코넬리센의 양조 철학때문입니다. 포도밭에는 다양한 과실과 야채, 심지어 잡초까지 길러 자연적으로 포도나무의 개체수가 조절되도록 하니 진정한 내추럴 와인이라 할수 있겠네요. 

 

 

눈에 덮인 에트나 북쪽 지역 프랭크 코넬리센 포도밭

그는 왜 에트나를 선택했을까요. “프랑스 브루고뉴 마을단위 피노누아 본 로마네, 에세죠, 라 타쉬 처럼 명확하게 캐릭터를 보여줄수 있는 곳이 에트나죠”. 시칠리아는 굉장히 더운 지역이지만 유일하게 에트나 북쪽에만 2월까지도 눈에 덮일정도로 선선한 기후를 보입니다. 부르고뉴와 이탈리아 피에몬테와 거의 비슷한 기후를 지녀 네렐로 마스칼레제 는 피노 누아와 네비올로의 우아하면서 힘이 있는 캐릭터를 닮게됩니다. 여기에 화산 토양 덕분에 가벼운 스모키향과 씁슬한 미네랄이 부여되면서 캐릭터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네렐로 마스칼레제가 탄생하는 겁니다.

 

 

콘타티노 2002
콘타티노 2017

프랭크 코넬리센은 네렐로 마스칼레제에서 다양한 토착 품종을 섞어 여러 ‘변주곡’을 만들어 냅니다. 콘타티노(Contadino)가 대표적인 와인이죠. 네렐로 마스칼레제 85%에 역시 시칠리아 토착품종인 네렐로 카푸치오(Nerello Capuccio), 미넬라 네라(Minella Nera), 알리칸테 부쉐(Allicante Bouschet), 미넬라 비앙코(Minella Bianco)를 조합합니다. 처음 만든 2003년과 최근 빈티지 2017년을 비교 시음했습니다. 평균 수령 50년이상의 포도나무에서 손수확한 포도로 만드는데 저마다 다른 미세기후를 지닌 6곳 포도를 섞어 복합미를 극대화시켰습니다. 연간 생산량은 2만4000병입니다.

 

 

콘탄티노 2017과 2003의 색 차이

2003 빈티지는 세월이 많이 흐른만큼 아세톤과 식초 등 산화캐릭터를 많이 보여줍니다. 2017는 아주 영한 빈티지인데도 중간 강도의 내추럴 와인 느낌으로 신선한 과일향이 지배적이지만 역시 산화 캐릭터를 지녔습니다. 마치 시골길을 논두렁을 지날때 바람에 풍겨오는 정겨운 내음 같네요. 프랭크 코넬리센은 “옥시데이션의 장점은 깊이감과 익은 느낌을 주죠. 신선함과 밸런스를 위한 목적도 있답니다. 2003 빈티지는 첫 시도한 와인인만큼 사실 완벽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내 색깔이 많이 담긴 와인이죠. 포도의 깊이 집중미를 찾아내 어떻게 발전시킬건지를 늘 고민해요. 2015년부터는 과일의 신선함을 살리는데 좀더 비중을 두고 있답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