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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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달라지는 가족의 의미… 삶을 담아내는 ‘집’도 따라 바뀐다

日 고레에다 감독이 성찰한 ‘가족의 붕괴’/인간 최후의 보루 가족·집도 변화의 대상/현대인들이 예측 못한 상황에 허둥댈 뿐//주말 부부·맞벌이 가정·3대 모여 사는 집/같은 집이라도 다른 의미의 ‘공간들’ 필요
‘바닷마을 다이어리’ 주인공의 집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네 자매가 사는 오래된 집. 그들에게 집이라는 것은 낡고 불편하지만 떠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것이다.
# 가족이라는 오래된 테두리에 모인, 완전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일본 영화감독의 이름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그의 영화의 주제나 경향도 대충 들어 아는데, 정작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었다. 영화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적거리다 보러 가려 하면 상영관에서 내리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또한 내가 그렇게 열심히 영화나 화제가 되는 책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그렇게 된 것도 있긴 하다.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 하는데, 자극적인 내용이나 화려한 스케일의 영화가 판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요즘에 유수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을 몇 번 들었다. 특히 올해는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이번에도 극장에서는 그의 영화를 보지 못했고, 대신 추석 연휴에 맘먹고 저녁에 한 편씩 몰아보기로 했다. 무작위로 골라서 제일 먼저 본 것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영화였다. 사실 미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본 것이 아니라서, 막연히 바닷가 마을에 사는 어부 가족의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추측을 하며 보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가마쿠라라는 바다에 면한 도시가 배경인데, 그곳에 오래된 집에 사는 세 자매가 나오며 시작된다. 어느 날 15년 전 외도 끝에 집을 나간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지카자와 온천지구로 찾아간다. 그곳에는 아버지와 고향을 떠났던 여자가 남겨 놓은 딸과 이후 아버지가 다시 만난 세 번째 부인이 있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아주 기묘한 인연의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세 자매는 이복동생에게 우리 모두 어른이니 너 하나는 감당할 수 있다며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네 자매는 부모가 남긴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내내 그들의 일상을 느리게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오래된 테두리에 완전하지 않은 가족이 살고 있다. 영화적으로 대단한 기법이나 대단한 반전도 없으며 상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영화는 보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재혼을 하며 세 자매를 집에 놔두고 떠난 어머니가 오랜만에 돌아와 집을 팔아버리자고 한다. 그러자 큰딸이 어머니의 계획에 완강한 반대를 한다. 그녀에게 집이라는 것은 낡고 불편하지만 떠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집을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키우고, 어떻게 보면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 아버지의 애인의 자식까지 거둔다.

이후 기나긴 연휴 동안 밤마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봤다. 그러다 보니 쉰 날만큼 편수가 쌓였다. ‘태풍이 지나가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의 중심은 어김없이 가족이다. 그런데 그 가족은 좀 묘하다. 평범한 가족들이지만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격렬한 갈등은 없지만 편안하지 않고 특별한 화해와 애정이 폭죽처럼 터지지도 않는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무척 독특한 시선과 온도를 가지고 있으며 말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태풍이 지나가면’에는 이혼상태의 부부와 아들이 할머니의 낡은 아파트에 찾아간 밤의 이야기이다. 이곳 역시 낡았지만 강한 테두리인 가족을 상징하는 공간이 나오고, 태풍이라는 불가항력이 그들을 억지로 묶는다. 과연 가족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던져준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이혼한 부부가 두 형제를 각자 나눠서 키우고 있는데, 어린 형제는 부모의 재결합을 위해 노력한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오래된 집에 사는 부모와, 결혼에 실패하고 아들을 키우는 여자와 결혼한 아들이 역시 오래된 집에서 만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아들이 바뀐 두 부모가 나온다.

낡은 집과 낡은 제도, 어떻게 보면 현대에서 가족의 의미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

# 가족,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바라보다

예전에 무척 좋아하던 시가 하나 있었다. ‘가족 풍경’이라는 시인데 “형은 장자(長子)였다”로 시작해서 “형은 찢긴 와이셔츠처럼 웃고 있었다”로 끝나는 시이다. 그런데 가족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피어오르는 느낌과는 조금 멀었고, 명절에 모인 서먹한 가족의 모습처럼 불편함이 가득 담긴 시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는 개념은 국가라는 개념처럼 사람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집이 변하고 가족이 변한다. 시대가 바뀌며 자연스럽게 집이나 가족이나 친척의 개념이 바뀌는 것인데, 그에 따라 기능들이 달라지거나 축소되고 확장되며 각자의 개성에 맞는 집이 생긴다.
① 마당에 대문 더 두어 외부 차단 집 지을 땅이 두 개의 레벨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주차장과 집 중간에 걸쳐진 마당에 대문을 두어 외부에서의 접근을 한번 걸러주었다.

가령 예전의 집의 중심으로서의 대청이나 현대의 거실은 그 기능이 희미해지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뒷방 노인네’ 같은 신세로 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는 집안 행사가 사라지고 있고 가족이 모여서 같이 보던 텔레비전의 기능이 휴대폰이나 각자의 컴퓨터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반면 부엌이나 식당은 단지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공간에서 가사의 중심이자 가족들이 유일하게 모이는 집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점점 의미가 커지고 있다. 가족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모이는 경우가 드물게 되면서 새로운 행태에 적합한 집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가족의 테두리가 느슨해지면서 1인 가정이 늘어나고, 혹은 예전의 핵가족보다 더욱 단출해진 가족이 집에서 산다. 우리가 먼 미래의 주거형태로 예상하며 우스갯소리로 떠들었던 것이 현실로 급속히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집이라는 명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가족이라는 명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한 집이나 가족은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배경이다. 나는 그 두 개의 명사가 인간의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② 대청마루를 지나면 안마당 나와 집의 외벽에서 연장된 담을 지나 들어오면 손님방과 연결된 아늑한 대청마루가 있어 안마당과 뒷마당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그러나 변화의 폭이 커지고 양상을 예측하기 힘들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당황하고 허둥댄다. 누가 ‘일정한 시점에 세상의 가족은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도로 가족의 개념을 보정하십시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계속해서 가족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인간의 고독과 곤란에 대해 취재하고 자세하게 보여준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가족의 붕괴에 대한 성찰로 가득 차 있었다.

최근에 세 곳에 집을 완성하며, 그 집들을 통해 이 시대의 가족 유형에 대해 생각했다.

원주에 지은 집은, 주말부부로 살던 남편이 은퇴하며 먼저 머물게 된 집이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부인은 가끔 오다가 나중에 합류할 예정이다. 사이는 좋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았던 부부의 집을 짓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자의 취향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부인채와 남편채를 따로 만들었다. 우리 주거의 오랜 방식이기도 한데 지금은 조금 낯설다.

단순하고 약간은 서양식 아름다움을 추구한 남편채와, 안쪽에 들어가 있으며 한식 공간을 지향하고 있는 부인채, 이 집은 그런 큰 구성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부부가 한 대지 안의 다른 채에서 각자 자기 일을 한다는 것, 즉 가족 간의 일정한 거리와 각자의 영역 확보가 이 집의 가장 큰 줄거리였다. 이런 형태는 앞으로 우리의 주거문화를 끌고 갈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구례에는 부부와 아이, 그리고 외할머니, 3대가 사는 전통적인 가족을 위한 집을 지었다. 겉에서 보면 2층집이지만 약한 경사를 가지고 있는 땅의 조건을 이용한 수직으로 4개의 레벨을 가진 집이다. 즉 반층씩 물린 4층의 집으로 만들어, 가장 현관에 가깝고 땅과 가까운 곳에 할머니의 공간을 만들고 반층 올라간 집의 중간에 가족의 공통공간인 거실과 식당, 주방을 만들었다. 반층 위에 부부의 방과 아이의 방이 있고, 다시 반 층 오르면 남편의 공간이자 취미를 위한 공간이 있다.
③ 재택근무 아내를 위해 만든 거실 가장 오랜 시간 집에 머무는 부인을 위해 거실 옆에 만든 작은 다실 겸 공부방 뒤에 숨겨진 계단을 오르면 2층 아들 방으로 통하는 다락방이 나온다.

그리고 거실에 면한 레벨에 맞추어, 바깥에 손님이 오면 묵을 수 있는 별채를 만들었다. 가족들의 공간이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분리되어 있지만 서로 시선이 맞닿는 곳에 있어서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갖도록 한 것이다.

# 변화하는 가족, 변화하는 집의 풍경

양평에는 서울에 직장을 둔 30대 부부와 4살짜리 아들, 세 식구가 사는 집을 지었다. 어찌 보면 요즘 가장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다. 육아를 위해 재택근무를 하게 된 아내를 위한 작업공간과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를 위한 공간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처음에 만났을 때 들은 ‘안전한 집’을 설계해 달라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가? 자연으로부터인가, 인간으로부터인가, 혹은 가족으로부터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간에 대한 위협은 끊임없이 바뀐다. 내세에 대한, 추위와 더위에 대한, 자녀의 교육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짐에 대한 수많은 공포는 장사꾼들에게는 매상을 올리기 위한 더없이 좋은 도구 노릇을 해준다. 우리를 늘 쫓기는 신세로 만들고 열등하다고 느끼게 만들며 잠도 못 자게 우리를 볶아 채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런 외부의 문제보다 가족 내부의 문제가 불거질 때 더 괴롭다. 나와는 다른 존재가 나와 같이 살기 때문에, 처음 가족을 이루고 성장하는 오랜 과정에서 언젠가 스스로에 대해 눈을 뜨고 각자의 다름이 충돌할 때 문제가 시작된다. 마치 겨우내 덮여 있던 하얀 눈이 봄이 되며 녹아내리면서 그 아래 깔려 있던 여러 가지의 색깔이며 존재들이 드러나듯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또한 과연 집이 막아주고 받아줄 수 있을까?

‘안전한 집’이라는 화두를 고민하면서, 일단은 집 주위로 몇 개의 겹을 만들어 실제적인 담이 되기도 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도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안에 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애초에 집 지을 땅이 두 개의 레벨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주차장과 집 중간에 걸쳐진 마당에 대문을 두어 외부에서의 접근을 한번 걸러주었다. 집의 외벽에서 연장된 담을 지나 들어오면 손님방과 연결된 아늑한 대청마루가 있어 안마당과 뒷마당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손님들은 집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지 않고도 외부공간과 마루 등에서 머물 수 있다.

내부는 단절된 듯 통한다. 1층에는 거실과 손님방, 그리고 주방이 있으며 한 단 아래 바닥 높이에 변화를 준 거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갈 때 사용하는 보이는 계단과 숨겨진 계단 두 개가 있는데, 숨겨진 계단은 가장 오랜 시간 집에 머무는 부인을 위해 만든 작은 다실 겸 공부방 뒤에 숨겨 놓았다. 그 계단을 오르면 2층 아들 방으로 통하는 다락방이 나오고, 아들 방을 통하면 집은 다시 부부의 방과 욕실 등 집의 주요 공간으로 이어진다. 마치 에셔의 계단 그림처럼 숨겨지면서도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복잡하지만 안도감을 준다. 단절과 연결이 공존하는 이 집에서, 독립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동선을 통해 가족들의 유대가 더 깊어지도록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부처님의 마지막 남긴 말씀도 “세상은 변한다. 더욱 정진해라”가 아닌가. 그런 세상의 이치가 가족까지 해당되는 줄 몰랐거나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무르익은 봄 안에는 여름이 있고, 여름이 다 닳으면 가을이 되듯 사람이 사는 공간이나 형태도 계속 변화한다. 그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달라진 환경에 대응하는 가족의 풍경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런 풍경을 담는 집을 만들어갈지 꿈꾸는 것은 무척 어렵고도 즐거운 일이다.

가온건축 공동대표·『골목 인문학』 공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