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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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의사람In] 그리운 이름을 그리워하자

일간지의 부고란을 꼼꼼히 챙겨 읽던 선배가 있었다. 지인이나 존경하는 문단 어른의 이름을 발견하면 바쁜 와중에도 꼭 조문을 다녀왔다. 기쁜 일은 언제든 축하의 뜻을 건넬 수 있고 그리 해도 크게 섭섭하지 않지만 슬픈 일, 특히 지상의 일과를 마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가족을 위로하는 일만큼은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원칙에 철저했다.

그 선배가 덜컥 병상에 누웠다. 쉰 하나였나, 둘이었나. 우리의 인연이 오래이고 질겨 병원에 입원한 선배를 가끔 들여다보았다. 병동에서도 선배는 구내 편의점에서 사온 신문을 펼쳐 놓고 부고란을 읽었다. 그해 늦은 봄날 병실에 들어서니 선배와 한 방의 환자 모두가 TV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 존경하던 분의 장례식이 중계되고 있었다. 투병중이 아니었다면 선배도 직접 가 망자의 안식을 빌었으리라. 그로부터 열흘이 못 돼 선배가 눈을 감았다. 여러 일간지의 부고란에 선배의 이름이 실렸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발이 넓었던 선배의 빈소는 여느 인사 못지않게 붐볐다. 오랜 벗끼리 ‘뿌린 대로 거두었노라’고 농을 주고받았다.

그 선배뿐이랴. 순서는 뒤죽박죽이어도 누구에게나 끝의 순간은 온다. 올해는 문학계의 부고가 많았다. 술과 밥을 나누고 안부도 묻던 소설가가 떠나고, 독자로 좋아하던 시인이 떠나고, 또 누구도 떠났다. 연만하신 어른의 경우는 그나마 덜하지만, 삶에도 창작에도 열심이던 후배는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동종업계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던 누군가의 부음은, 더군다나 자의나 타의에 의한 사고사라면 후유증이 좀 길게 간다.

지인을 떠나보내고 나면 실질적인 이별의 절차가 남는다. 휴대폰에 저장된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삭제하는 일. 그 간단한 작업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은 무상함만이 아니다. 애도의 유효기한을 일방적으로 선포해 버린 것 같은 죄책감이라니. 전화번호부에서 사라졌을 뿐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이름과 마주친다. 숨바꼭질하듯 그들이 남긴 작품이 책장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민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그들은 가고 그들의 숨결이 작품에 남았다. 책은 생전에 그 자신이 마련해둔 비석이 아닐는지. 아무개, 하고 부르는 소리에 육성으로 답하는 그가 그리울 땐 어쩌겠는가, 그 이름 새겨진 묘비라도 어루만질 수밖에 없겠다.

정길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