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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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이야기를 나누자

왜 소설가가 됐느냐고 묻는다면/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서로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게/진정한 소통의 시발점이 아닐까
누구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때 레프 톨스토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안톤 체호프,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막심 고리키 같은 작가에 빠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급 권장도서였던 ‘죄와 벌’이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읽고 독후감까지 써야만 했던 기억도 난다. 러시아 작가 중에서도 체호프를 좋아했는데 그의 작품들이 주로 단편이었던 데다 유머감각 속에 숨겨진 인생의 서글픔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는 고골의 책을 다시 읽고는 계급과 허위의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소설의 주요 공간인 도시, 거리에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국내 한 문학기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동아시아학과 주최로 진행되는 ‘한국문학 번역실습 워크숍’에 참가하게 됐다. 처음으로 러시아를, 그것도 ‘죄와 벌’의 무대이자 도난당한 외투를 찾아 영혼이 헤매다녔던 도시에 가 볼 기회가 생긴 셈이다. 

조경란 소설가
10월 첫주의 날씨는 주최 측에서 알려준 정보보다 춥지는 않았으나 문학을 통해 갖게 된 잔상 때문이었는지 나에게 그 도시는 ‘외투’에 나오는 대로 골목마다 사방에서 쌩쌩 몰아쳐 오는 바람의 거리처럼 다가왔다. 모르는, 그러나 작품 속에서 익히 가본 적이 있는 거리를 옷깃을 여민 채 걸어다니다가 첫 워크숍이 열리는 장소로 갔다. 우리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고 번역을 하는 학생들, 학과 관계자들과 시간이 깊어가도록 한국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년 전에도 한 번 열렸던 행사인데 학생들과 지도교수가 공동번역한 우리나라 단편집 앤솔로지를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문학을 번역해 러시아 독자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학생들과 이틀 동안 워크숍을 가졌고, 사흘째 되는 날엔 일반 청중 앞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가보고 싶었던 도스토옙스키 생가나 그 작가가 ‘죄와 벌’을 쓸 당시 걸어다녔던 광장이나 시장도, 푸시킨 박물관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박경리 선생의 동상과 고골의 ‘코’모양의 동상이 세워져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동아시아학과의 정원에 가 보았으며, 학생들이 우리나라 문학을 공부하는 강의실에도 갈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우리 문학에 대한 어떤 열의와 호기심, 깊은 관심으로 반짝이는 학생들의 표정과 눈빛을 보았다. 마지막 낭독회를 마치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 도시의 금빛 첨탑과 성당, 청동의 조각품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았던, 한국문학을 좋아하고 자국에 소개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의 첫인상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러시아 문학 강의’를 쓴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953년 코넬대학에서의 첫 번째 문학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수강하는 이유를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학생들의 페이퍼를 본 나보코프는 흡족한 듯 웃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거의 모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야기를 좋아해서 작가가 됐고 소설을 쓰고 있다. 이야기는하는 것도 좋지만 들을 때도 좋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 어쩌면 문학의 출발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번역 워크숍에 참가한 기념품으로 에코백 하나를 선물받았다. 가방 앞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Sharing Korean Literature with the World(한국문학을 세계와 공유함). 이처럼 한국문학을 세계와 나누고 국내 독자와 나누는 것은 예전보다 더 중요하고 엄중하게 느껴진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더욱 그렇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책장을 펴는 일처럼 신비스러운 행위이며, 관심이든 이해든 소통이든 그때부터 비로소 무언가가 우리 안에 일어날 테니까.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