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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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내비게이션 ‘유감’

‘딩동. 딩동. 딩동….”

전면 유리창 아래 작은 LCD 화면에 붉은빛이 반짝였다. 동시에 요란한 경고음이 들렸다. 과속이다. 특정 지역에서 규정 속도를 넘을 때 내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은 그렇게 신호를 보낸다. 내비게이션에서 600m 거리가 남았다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오른쪽 발을 가속페달에서 떼고 브레이크 페달 쪽으로 이동했다. 차는 과속감지 카메라가 보이는 위치에서 규정 속도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에도 범칙금은 피했다.

김달중 정치부 차장
2000년 처음 차를 운전했을 땐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당연히 모르는 지역은 두꺼운 지도책에 의존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지도책은 차를 처음 살 때 차량판매 영업사원이 선물로 주거나 중고차를 살 때는 서점에서 직접 구매했다. 주요 고속도로가 앞면에 나와 있고, 지역별로 세부적인 지방도로가 그려져 있는 지도를 말한다. 업데이트가 당연히 느릴 수밖에 없다. 매년 지도를 사지 않으니 새로운 도로를 직접 보기까지는 옛 도로를 사용하게 된다.

지도는 사용할 때는 먼저 목적지까지 어떤 도로를 이용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목적지 주변에 눈에 띄는 건물이 없을 경우에는 난감할 때가 있다. 그렇게 몇 번을 돌고 돌아 도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렇듯 차를 몰고 간다는 건 예상시간보다 더 일찍 출발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이런 오류를 크게 줄여줬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최단 거리를 알려준다. 초창기 모델은 지도가 나오지 않고 단순하게 좌·우, 유(U)턴 정도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혁명적이었다. 낯선 길을 나설 때 느끼는 부담감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내비게이션에 사용하는 시스템은 나날이 발전했고 프로그램 크기도 더욱 커졌다. 이제 사용하는 메모리 용량이 16기가(G)를 넘어선 제품도 나왔다. 더 복잡해진 알고리즘, 이제는 단순한 3D를 넘어 증강현실까지 반영된 프로그램도 있다. 내비게이션은 차량 구매 시 선택하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낯선 여행지에서도 지도 없이 다닐 수 있고, 한글 표지판이 없는 외국에서도 운전이 가능해졌다. 또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을 품은 스마트폰은 업데이트 불편함을 해결했다. 실시간으로 지도와 교통정보는 스마트폰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과속단속 카메라 구간 감지는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이 아닐까.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설치한 단속 카메라에 맞춰 속도를 줄이도록 운전자에게 신호를 보내주는 것은 사고 방지 기능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급격한 감속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또 다른 피해 가능성도 여전하다.

규정 속도는 카메라가 있고 없고를 떠나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안전한 구간에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말 그 구간에 해당 속도가 안전한 것인지는 당국이 면밀하게 살펴 속도를 조정하면 될 일이다. 어쩌면 이 같은 논쟁은 앞으로 나올 무인자동차에서는 사라질 주제일지도 모른다. 허용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주행할 테니 말이다.

김달중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