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공기업 고용세습·비리 만연, 이참에 뿌리 뽑아야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논란을 계기로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벌어진 채용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공기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의 직장’인 공기업 채용 비리는 수많은 취업준비생의 좌절감을 키운다. 인천공항공사에선 보안업체 간부의 조카 4명 비정규직 채용을 비롯해 협력업체 6곳에서 직원 친인척 채용 사례 14건이 적발됐다고 한다. 공사 측은 2020년까지 협력업체 비정규직 3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고 7000여명은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인데 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 후 첫 청와대 외부 일정으로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곳이어서 파문이 크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도 지난 5월 비정규직 228명의 정규직 전환 때 기존 직원의 친인척 19명이 포함됐다고 한다.

정부가 아무런 준비 없이 무리하게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온갖 부작용이 판을 치고 있다. 자회사 정규직 고용 편법을 둘러싼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김포공항 국내선 터미널 확장 기념식이 열린 17일에는 한국공항공사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본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공기업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재인정부 정책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인건비 급증으로 공기업 경영을 악화시켜 국민 부담을 늘리고 신규 채용 여력도 줄어들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잘못된 정책은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돌아오는 법이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제라도 전면 재검토하는 게 옳다.

지금까지 드러난 공기업 고용세습·비리 의혹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에서는 2011년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도운 해고 노조원들이 대거 복직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권력과 노조가 담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야당들은 서울교통공사 등의 고용세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기업까지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참에 공기업 고용세습·비리 실태를 파헤치고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검찰이 엄정한 수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공기업 고용세습·비리 의혹에 대한 전면조사는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현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