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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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유엔사 해체 요구한 北, 다음엔 무엇 들고 나오려는가

북한이 지난 12일 열린 제73차 유엔총회 개별위원회에서 유엔군사령부를 “괴물과 같은 조직”이라며 유엔사 해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비핵화에 앞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북한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김인철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서기관은 유엔총회 제6위원회에서 “긴장 완화와 평화를 향한 한반도 상황전개에 근거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유엔사는 해체돼야 한다”고 했다. “유엔이라는 이름을 잘못 사용해 유엔헌장의 목적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앞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사는 북남 사이의 판문점선언 이행까지 가로막는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인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가 유엔사 해체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은 오래됐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종전선언이 유엔사나 주한미군 지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종전선언을) 똑같은 개념으로 생각함을 확인했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북한 외교관들의 주장을 보면 그들의 속셈이 어디 있는지 분명하다. 유엔사의 기본 기능은 한반도의 정전협정 및 정전상태 유지다. 종전선언은 정전협정 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종전선언으로 정전체제가 막을 내리면 유엔사의 존립 근거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북한이 이를 선수친 것이다. 북한의 요구에 따라 유엔사가 해체되면 한미연합사도 존재 명분을 잃게 된다. 결국 주한미군이 영향을 받게 되고 한·미동맹의 고리가 느슨해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다음에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나올 게 뻔하다.

남북관계 개선 국면을 틈탄 북한의 전략적 압박은 유엔사 해체 요구에 그치지 않는다. 대북제재 완화 요구도 꺼냈다. 대북제재는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국제사회가 결의해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위협의 근본 요인이 제거돼야 국제사회가 제재를 걷어낼 수 있다. 제재의 원인 제공자인 북한은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를 미루면서도 제재의 피해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북한의 전형적인 선전술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면서 그 선전술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 스스로가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