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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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이석훈 “노래는 1도 걱정 없는데 연기가…”

그룹 SG워너비 멤버 이석훈이 선택한 두번째 뮤지컬은 의외였다. 올해 초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소심한 젊은 사장 찰리 역으로 생애 첫 뮤지컬 무대에 오른 그는 올 겨울 뮤지컬 ‘광화문연가’로 돌아온다. 11월 2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그가 맡은 역은 월하. 배우 구원영·김호영이 함께 캐스팅됐다. 월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현실과 사후 세계 사이에 있는 일종의 신이자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중매쟁이다. 공연에서는 사회자처럼 극을 안내하며 관객을 쥐락펴락하고 간간이 웃음도 이끌어낸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연 무대에서 배우 정성화·차지연이 이 역할을 맡았음을 고려하면, 이석훈의 선택은 의외일 수밖에 없다. 정성화·차지연의 월하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있었던 데다 때로는 거침없이 망가지기도 했다. 대중에 비춰져온 이석훈의 색은 이들과는 딴판이다.

최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 후 언론과 만난 이석훈은 이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며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내게 맞는 신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건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이석훈은 ‘킹키부츠’ ‘광화문연가’ 모두 도전하는 마음에서 했다며 “저는 하루하루 제 역사를 쓰자고 생각하는데 막상 아무 것도 안 하고 닫혀 있는 것 같고, 나중에 내 과거를 봤을 때 수고했다는 말 정도는 해주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지난 10년간 드러내서 활동해온 사람이 아니었기에 많은 분들이 저를 부드러운 노래만 하고 발라드 이미지에 선하다고 알고 계신 것 같다”며 “제가 연기하고 싶은 월하는 그렇지 않기에 이번 기회에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도) 확 깨부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다음은 이석훈과의 일문일답.

-‘킹키부츠’의 찰리는 기존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데 ‘광화문연가’의 월하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광화문연가’ 자체가 주크박스 뮤지컬이잖아요. 노래 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일단 가능성을 열어뒀어요. ‘월하’ 역할이 신이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로 어떻게 연기할지는 제가 결정하면 되는 문제에요. (월하를 통해) 우리가 가진 신의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뭘까 고민했죠. 연기하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어떻게 하면 내게 맞는 신을 찾을 수 있을까가 어렵죠. 신하면 전지전능한 느낌이 있잖아요. 전 그런 느낌을 좀 주고 싶어요. 호영 형은 마당놀이처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래도 진중함이 있는 역할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기존의 월하 연기는 익살스럽고, 쇼맨십도 필요한데.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에서 꼭 재밌고 코미디를 해야지만 월하가 (주인공) 명우를 이끌어가는 내용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광화문연가’라는 작품을 남기고 싶지 월하 개인기로 남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튀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명우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인도할 수 있게, 그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두 선배님들이 재밌게 해주셨어요. 저도 보면서 ‘만약 내가 월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거든요. ‘난 안 어울릴 것 같아’라고 생각했기에 지금 이렇게 연기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아예 (코미디를) 배제하진 않고 노력하고 있어요.”

-노래에는 자신 있었다라. 가수 출신이라 그런가.

“제 스스로 뮤지컬 발성에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주크박스는 가요 베이스이고, 저는 그걸 해왔고, 이에 더해서 가사가 잘 들리게 부르면 되기에 노래에 대해서는 1도 걱정이 없어요. 가장 큰 걱정은 연기예요. 제가 지금 육아 중이라 체력이 딸리는 건 사실인데, 체력은 괜찮을 것 같고요. 연기를 어떻게 풀지가 계속 고민이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요.”

-가수 이석훈과 배우 이석훈의 다른 점이라면

“제가 10년간 드러내서 활동해온 사람이 아니었기에 많은 분들이 저를 부드러운 노래만 하고 발라드 이미지에 선하다고 알고 계신데요. 제가 연기하고 싶은 월하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걸 확 깨부수는 기회가 이번일 것 같아요. 찰리는 비슷했어요. 그래서 어렵지 않게 했지만, 이번 월하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실 거고, 받게 해드릴 거예요. 나도 몰랐던 내 모습, 알고 있지만 표출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연기하는 게 재밌어요. 이번에도 느끼고 있어요. ‘맞아, 난 이런 게 있었지, 이걸 월하로 보여주자’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광화문연가’는 고 이영훈 작곡가의 곡을 모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가수로서 이영훈 작곡가의 곡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그 분의 노래를 접하면서 느낀 건 ‘대단하다.’ 저도 곡을 만들고 부르는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셨고 이런 음악을 만드셨고 이 한 곡에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었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곡을 귀하게 생각하고 다루고 있죠. 좋아하는 곡은 ‘기억이란 사랑보다’. 굉장히 좋아해요. 작년에 뮤지컬 보는데, 이 곡이 쫙 나오잖아요.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영훈 작곡가의 곡이 왜 아직까지 사랑받을까.

“저 같은 경우, 좋으면 이유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냥 제가 느끼기에 너무 좋아요. 많이 커버하고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걸 보면….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해요.”

-첫 작품 이후 바로 두 번째 작품인데 활동 영역을 넓힐 계획인가

“계획까지는 아닌 것 같고요. 작품이 좋으면 열려 있죠. 그 시기가 맞다면 안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킹키부츠’로 인터뷰할 때는 ‘전 킹키부츠 하고 안 한다’고 얘기했는데 마라톤 뛰고 또 뛰는 것처럼 분명히 당기는 게 있더라고요. ‘왜 하지’ 싶긴 하면서도. 확실히 그 매력이 뭐라고 딱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몸이 반응하는 게 있어요. 그 시즌 제 목표가 도전이었어요. 찰리도 도전하는 친구였기에 잘 맞았죠. ‘어, 좋다, 잘 맞았다’ 또 들어오기에 ‘도전해보자’ 이런 시간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까진 ‘나 뮤지컬 계속할 거야’라고 말씀드리진 못 하지만 문이 열려 있는 건 사실이에요. 활짝은 아니지만. 전에는 제가 (예능 등 다른 장르에) 정말 닫혀 있었는데요, 작년부터 계속 도전하고 익숙해지자 생각하고 있어요.”

-왜 도전하는 자세로 바뀌었나

“제 삶의 모토가 하루하루 역사를 쓰자예요. 역사를 쓰려고 보니 뭐가 없더라고요. 아무 것도 안 하려 하고 닫혀 있고. 나중에 내 과거를 봤을 때 ‘수고했다’는 말 정도는 해주고 싶은데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전하게 됐고, 도전한 김에 누구보다 잘 하자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제게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후회하지 말자, 하루하루 역사를 쓰자’는 마음이 됐어요. ‘킹키부츠’ 하고 나서는 제 자신에게 ‘수고했어’라고 할 수 있었어요. 이 작품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킹키부츠’ 때 가수 출신 배우의 첫 뮤지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봐서인지, 공연 초반에는 다소 몸이 굳어 있는 듯 했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배역에 몰입해서 에너지를 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저는 (그 때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색안경을 어떻게 하면 벗기지’ 하는 고민을 했죠.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빠른 시일 안에 벗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제가 알기에, 처음에 더 그렇게 연기했어요. 모자란 애처럼, 바보같고 맹한 면을 처음에 더 드러냈어요. 그렇다고 제가 너무 자뻑하건 아니고요. 이런 주문을 스스로 외지 않으면 제가 무너질 것 같아서 계속 마인드 콘트롤을 했어요.”

-‘킹키부츠’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이번에 보완하고 싶은 점이라면.

“첫 번째, 두 번째 공연까지 아쉬웠어요. 두 번째 공연 끝나고 제 자신한테 너무 화가 났어요. ‘이만큼 준비했는데 그렇게밖에 못 보여주나’ 해서, 두 번째 공연 끝나고 화가 나 잠을 못 이뤘던 것 같아요. 그 기분이 세 번째 공연까지 이어졌는데, 오히려 (그러고나니) 공연이 잘 나오더라고요. 그럼 화를 내보자 했죠.”

-관객에게 어떤 평을 듣고 싶나

“(인터넷 댓글은) 안 보려 하는데 사람인지라 눈이 갈 때도 있어요. 좋은 댓글 보다가 안 좋은 댓글 나오면 안 봐요. 그런 게 저한테 미치는 영향이 큰 걸 알아서요. ‘광화문연가’는 주크박스이기에, 노래를 잘하면 다 용서될 수 있는 뮤지컬이라 봐요. 노래를 잘 한다는 평을 받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못하는 애가 (전체 무대에서) 튀거든요. 그렇게만 안 됐으면 좋겠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사진=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월하 역을 맡은 SG워너비 멤버 이석훈. CJ E&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