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고장난 스마트폰 버리기 대장정

남편이 MP3용으로 음악만 듣기 위해 가지고 다니던 구형 아이폰이 어느 날 ‘사망’했다. 갑자기 화면이 꺼지더니 먹통이 됐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어진 아이폰을 버리기 위해 스마트폰을 살 때마다 이용하는 집 앞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서는 스마트폰 안에 들어 있는 전화번호나 메시지 같은 정보를 모두 삭제하면 처리해줄 수 있다고 했다. 전원이 들어오지도 않는 스마트폰의 정보를 무슨 수로 지울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집으로 가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진경 경제부 차장
이번에는 주민센터에 문의해보기로 했다. 과거 환경부나 시민단체 등에서 폐휴대전화를 수거해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고장 난 스마트폰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따로 수거하는 데가 있는지 물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머뭇거리며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어 그런 건 구청에서 담당하지 않겠느냐며 청소과 연락처를 알려줬다. 곧바로 안내받은 구청 청소과로 전화했다. 구청 담당 직원은 각 주민센터에서 처리하는 것이라며 주민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물어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다시 주민센터에 전화했다. 이번에는 다른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못 쓰게 된 스마트폰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응답자는 “이전에는 휴대전화 수거 캠페인 같은 것도 했지만 지금은 안 하는데” 하며 잘 모르겠다고 답할 기색을 보였다. 치미는 짜증을 누르고 주민센터, 구청, 다시 주민센터로 전화를 하고 있는 상황임을 설명했다. 그는 주변 동료에 물어 물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폐건전지나 형광등을 버리는 곳에 놓으면 수거해간다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포맷해 정보를 모두 지운 뒤 버리라고 덧붙였다. 다시 원점이었다.

이 난제는 우연히 알게 된 사설 아이폰 수리센터에서 해결됐다.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 중고폰을 산다고 써붙여 놓았기에 집에 있는 아이폰 이야기를 꺼냈다. 가져오면 포맷을 해줄 수 있다고 쉽게 답해줬다. 기술자의 도움으로 드디어 포맷을 할 수 있었다. 아이폰은 필요한 부품으로 쓸 수 있으면 쓰라고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주고 왔다.

고장난 휴대전화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이 문제에 무심한 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스마트폰을 바꾸게 되면 기존 휴대전화는 중고로 팔아달라고 매장에 맡기면 그만이었다. 그 후에 기존 휴대전화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무관심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 대란을 겪고 재활용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처리 방법에 대해 구청도 주민센터도 명확한 답이 있지 않았다. 스마트폰 속 정보 정리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다.

스마트폰 가입자는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5180만명)에 가까운 5011만명이다. 사실상 국민 1인당 1스마트폰 시대다. 중고로 나오는, 혹은 버려지는 스마트폰도 그만큼 많아졌다. 이제는 폐차를 처리하듯이 수명이 다한 휴대전화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진경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