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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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200만명 인간 띠 ‘발트의 길’

빨갛고 노란 낙엽이 바닥에 깔린 가을 어느 날,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나라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중심에 있는 게디미나스 언덕을 올랐다. 늦은 여름휴가였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 언덕을 조국의 긍지로 여긴다. 14세기 분열된 리투아니아 공국을 하나로 통합해 독립의 기치를 높게 든 게디미나스 대공(大公)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따 지었다. 오늘날에는 두번째 독립, 그리고 민주화를 상징하는 의미까지 더해졌다. 게디미나스 언덕 정상에 위치한 탑 내부 전시관. 머리카락 희끗한 초로의 리투아니아 신사가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신사의 얼굴은 가슴 벅찬 감동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29년 전 그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이 소련에 저항하던 그날을.
김범수 사회부 기자

지난 1989년 이 게디미나스 언덕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소련으로부터 독립과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발트의 길’의 시작점이었다. 발트의 길이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까지 678㎞를 시민들이 ‘손에 손 잡고’ 인간 띠를 이은 비폭력 평화운동이다.

길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온 발트3국 시민은 200만명이 넘었다. 당시 발트3국 인구가 800만명이 되지 않았다고 하니 독립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다. 전시관에 걸린 사진을 보면 청년, 주부, 노인, 어린이 모두 나와 손을 잡고 있었다. 손에 손 잡고 총과 대포로 위협하는 소련에 맞서 발트의 길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끝내 독립을 일궈냈다.

이름도 낯선 발트3국을 여행지로 택한 건 이 나라들이 우리나라와 닮았기 때문이다. 독일과 러시아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발트3국은 종종 전쟁의 불길로 뒤덮였고 20세기 들어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소련 두 나라에 차례로 주권을 빼앗겼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엄동설한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리투아니아계 음악감독 박칼린씨 가족이 그랬다. 독립을 쟁취한 이후 인터넷전화 프로그램 ‘스카이프’를 개발해 정보기술(IT) 강국으로 거듭난 것도 한국과 닮았다.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와보자. 광복 73년, 민주화 31년이 지났다. 조국을 위해 수많은 순국선열이 목숨을 바쳤지만 이들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은 조금씩 희미해진다. 마치 당연스럽게 독립과 민주화를 얻어낸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국제정세는 냉혹하기만 하다. 막강한 경제력으로 군사대국이 된 중국,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 러시아, 일본, 미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멀고 험하다. 힘을 숭배하는 강대국들이 또아리를 튼 상황에서 독립과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언제든 다시 짓밟힐 수 있다.

마침 11월17일이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들의 넋을 기리며 꽃 한송이 헌정하기 좋은 날이다. 우리가 광복을 이뤄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행복한 사회와 나라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순국선열의 희생 덕분이다. 비록 국제정세와 사회 갈등으로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은 꽃을 피우기 좋은 토양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국선열의 넋을 토대로 국가의 존치와 사회의 번영을 이어나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