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때려야 사는 남자' 아베의 극우 본색 [세계는 지금]

지난달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일본 정부의 ‘한국 때리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결집과 지지율 회복이 필요할 때 자주 써먹던 카드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하다. 반복되는 뻔한 수법에 일본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때리기→우익 결집→지지율 상승?

한국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일본 기업인 신일철주금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일본 정부는 연일 한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강경 자세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반발했고,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뒤엎는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며 “국제재판 등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정부는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제소당한 일본 기업들에 배상 거부 지침을 내렸고, ‘징용공’이라는 말 대신 강제성이 빠진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일본 정부의 강경 대응은 한·일 갈등이 부각될수록 정권의 구심력이 강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 문제가 양국 간 이슈로 부각하자 아베 총리는 직접 방송에 출연해 “한국이 10억엔(약 100억원)을 받았으니 한·일 합의를 이행하라”며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했다. 당시 아베 총리가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사학스캔들’로 급락하던 지지율은 5%포인트 정도 상승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이번 대응은 일본 국민의 지지를 별로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17일 일본 지지통신이 공개한 여론조사(9∼12일) 결과 아베내각 지지율은 42.3%로 지난달(41.9%)과 별 차이가 없었다. 교도통신의 3∼4일 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47.3%로 지난달(46.5%)과 비슷했다. 마이니치신문의 17∼18일 조사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41%로 한 달 전보다 4%포인트 올랐지만 이는 러시아와의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협상이 진전 기미를 보이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징용공 강경 대응의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반복되는 강경 대응에 일본 국민의 반응이 무뎌진 데다 일본 정부의 논리에 오류가 있는 것도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징용공의 개인청구권(미지불 임금 등 재산권, 위자료)은 소멸하지 않았지만 1965년 한·일 청구권·경제협력협정에 따라 관련된 돈은 한국 정부가 지급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협정에는 재산권에 관한 것만 규정하고 있으며, 위자료는 별개라는 게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므로 일본 정부의 입장에 비춰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이 열리는 지난 13일 도쿄돔 앞에서 한 남성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플래카드에 적힌 한자는 '양이(攘夷·오랑캐를 몰아내자)'로 극우 혐한 시위자들의 대표적 구호이다. 뉴시스
지난 14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일본공산당의 고쿠타 게이지(穀田惠二) 의원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고노 외무상 등을 상대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뒤 “결국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따졌고, 외무성 국제법국장(전 조약국장)은 “권리 자체는 소멸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고쿠타 의원은 “이번 판결에서 징용공이 요구한 것은 미지불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니고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와 연결된 강제동원에 대한 위자료”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는 대법 판결에 대해 “청구권협정에 명백한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아베정권의 입장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우익들의 창끝은 외교를 넘어 문화 분야로도 향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지난달 일본의 극우 성향 매체들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지민이 지난해 입었던 티셔츠를 갑작스럽게 문제 삼았다. 논란이 불거지자 일본 방송사들은 예정된 방탄소년단의 출연을 줄줄이 취소했고, 방송사들이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며 ‘손타쿠’(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해당 티셔츠에는 광복을 맞아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원자폭탄이 터지는 장면의 흑백 사진, 애국심(PATRIOTISM)과 해방(LIBERATION) 등의 영문 단어가 담겼다.

하지만 우익들의 바람과 달리 방탄소년단의 팬 ‘아미’(ARMY)와 일반 국민은 방탄소년단에게 “힘내라”며 응원을 했다. 방송 출연은 줄줄이 취소됐지만 방탄소년단은 예정된 13∼14일 도쿄돔 공연을 강행했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공연 첫날 공연장 인근 수이도바시역 앞에서 우익들이 1인 릴레이 시위를 하며 혐한 발언을 쏟아냈지만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같은 패전국 다른 행보… 사과 거듭하는 독일

독일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다. 이후 두 나라는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 경제 대국이 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일본은 민간인 학살, 위안부, 강제 징용 같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축소하고 덮는 데 급급하다. 반면 독일의 지도자들은 나치 만행에 대해 틈이 날 때마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패전국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9일 나치가 유대인을 공격하기 시작한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 8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의 유대교 회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독일에서 우려스럽게도 반유대주의를 경험하고 있다”며 “국가는 사회적 배제, 반유대주의의 인종차별, 극우주의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치는 1938년 11월9일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신호탄인 ‘깨진 유리의 밤’ 작전으로 유대교회와 기도실 1400여곳을 불태우고 유대인 수백명을 살해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은 약 600만명으로 추정된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4일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헌화했다. 그 자리에서 메르켈 총리는 “거의 80년 전 11월9일 대학살의 밤에 독일 내 유대인들은 예상할 수 없었던 증오와 폭력에 직면했다”며 “당시 전례가 없고 반문명적인 ‘쇼아’(shoah) 범죄가 뒤따랐다”고 말했다. 쇼아는 히브리어로 ‘절멸’이라는 뜻이며, 주로 홀로코스트를 가리킨다. 이 기념관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시설이며,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와 피해자 증언이 담긴 문서, 개인 자료 등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각국 정상이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 자주 찾는 장소다.

위안부 문제와 난징대학살 등 아시아 주변국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는 아베 총리도 2015년 1월 이곳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드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연설을 한 바 있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인 아베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 문제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2015년 8월 ‘전후 70년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언급하면서도 자국이 저지른 일임을 명시하지 않으며 책임을 회피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담화 이후 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과 잇따라 화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16년 12월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공습지인 하와이 진주만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방문해 추모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사죄와 반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일에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호주 북부 다윈의 전몰자위령비를 찾아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위령비에 헌화한 뒤 묵념하는 화해 퍼포먼스를 펼쳤다. 다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거점이 있던 곳으로, 1942년 2월19일 일본군의 공습으로 240명 이상 숨진 지역이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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