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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美 백인 급감·고령화에… 정치·선거 ‘지각 변동’ 현실화

NYT “비백인 인구, 25년 뒤 백인 추월” / 평균 연령 백인 43세·히스패닉 29세 / 26개주서 백인 사망자, 출생자 앞질러 / 유럽계 유입 줄고 중남미 이민자 쇄도 / 히스패닉계는 10년새 43% 크게 늘어 / 선거, 첨예한 인종간 대결로 자리잡아 / 비백인 유권자 지지로 민주 하원 장악 / 백인, 소수인종·이민자 유입에 불안감 / 공화로 결집할 땐 트럼프 재선에 유리
미국에서 다수 인종인 백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소수 인종으로 전락하는 시점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미 센서스국의 통계 분석을 인용해 2044년에는 미국에서 비백인 인구가 백인 인구를 앞지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백인 인구의 급속한 감소 현상은 미국 정치와 선거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수 인종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저학력·저소득층 백인 유권자층이 결집해 공화당 출신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러나 지난 11월6일 중간선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 등에 반감을 가진 비백인 유권자들의 대대적인 반격에 힘입어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당을 탈환했다. 미국 정치권이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이념 대결로 치닫는 데는 백인의 숫자가 크게 줄어드는 과정에서 드러난 첨예한 인종 간 대결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정치와 선거에서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인종 구성비 변화와 그 파장을 심층 진단한다.
중남미 이민자들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경을 접한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의 엘 차파랄 인근 국경 담장을 오르며 미국으로 가기 위해 월경을 시도하고 있다.
티후아나=AFP연합뉴스
◆미국 인구 구성비 변화

미국에서는 10년 단위로 인구 센서스가 실시된다. 2010년 센서스에서 미국 인구는 약 3억87만명으로 집계됐다. 단일 인종 중에서는 백인이 약 2억2360만명으로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중남미 지역 출신인 히스패닉이 약 50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6%를 점했다. 히스패닉은 2000년 센서스 당시에 약 3530만명이었으나 10년 사이에 43%가 증가했고, 그 기간에 증가한 미국 인구 약 2730만명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흑인은 약 3890만명으로 13%를 기록했다. 한국인 등 아시안은 약 1470만명으로 전체의 5%가량에 그쳤다. 이밖에 아메리카 인디언과 알래스카 원주민이 약 290만명(0.9%), 하와이와 태평양 섬 원주민이 약 50만명(0.2%)으로 집계됐다.
2010년 센서스 이후 8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 인구 구성 측면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백인은 상대적으로 자녀를 적게 낳거나 아예 낳지 않지만, 히스패닉은 자녀를 많이 낳는다. 게다가 유럽에서 미국에 이민 오는 백인은 소수에 불과하고, 중남미 출신 등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쇄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백인은 급격하게 고령화하고, 히스패닉은 젊은층을 형성하고 있다.

NYT는 최근 2018년을 기준으로 미국 전체의 백인 평균 연령은 43세이고, 히스패닉은 29세라고 전했다. 백인은 아기를 낳기 어려운 연령층에 급격하고 진입하고 있으나 히스패닉은 출산 절정기에 있다. 백인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출생자가 적고,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으로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절반이 넘는 26개 주에서 백인 사망자가 출생자 숫자를 앞지른 것으로 집계됐다고 NYT가 전했다. 이는 2년 전 17개 주에서 9개 주가 더 늘어난 것이다.

백인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으나 히스패닉 등 비백인 인구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 젊은층에서 백인은 이미 소수 인종이 됐다. 미국에서 약 4000만명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52%의 자녀가 부모 중 최소한 한 사람이 이민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NYT가 지적했다.
◆인종 간 제로섬 게임

미국 선거에서 인종 간 대결은 제로섬 게임이다. 백인과 소수 인종 중에서 한쪽이 이익을 보면 반드시 다른 편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특히 미국 건국 이래 다수 인종의 지위를 차지해온 백인이 약 25년 뒤에는 소수 인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백인과 현재 구도를 타파하려는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NYT는 “2016년 대선에서 백인이 줄어드는 급격한 인구 구성비 변화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고, 백인 유권자가 대거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전했다. 2012년 대선 당시에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했던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2016년 대선 당시에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물리쳤다. 선거 때마다 공화·민주당 간 승리가 엇갈리는 소위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에서 트럼프는 백인의 압도적 지지로 승리했다. 
지난 6일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인종과 학력이 투표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고학력 백인과 소수 인종은 민주당 후보를 밀었고, 저학력 백인은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CNN이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민주당은 흑인 표의 90%, 히스패닉과 아시안 표의 77%를 차지했다. 민주당은 소수 인종 유권자의 절대적인 지지로 하원 다수당을 탈환했다.

백인은 학력에 따라 투표 성향이 갈린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8년 선거까지는 저학력 백인은 절반가량이 민주당, 나머지 절반가량이 공화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에는 고졸 이하 백인 중에서 공화당 지지자가 민주당보다 24%포인트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는 고졸 이하의 백인 유권자 중에서 31%포인트가량을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보다 적게 득표했다. 이는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보다 2배가량 늘어난 수치이다. 클린턴 후보는 그러나 대졸 백인층에서는 트럼프보다 7%포인트를 앞섰다.
◆트럼프 재선 파란불

2010년 인구 센서스에서 72%를 차지했던 백인이 50% 미만으로 줄어들기까지는 앞으로 25년가량 남았다. 백인은 향후 선거에서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나머지 더욱 공화당으로 결집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소수 인종과 이민자 유입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저소득·저학력 백인이 똘똘 뭉쳐 각급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 몰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학자인 루이 타이사이라는 NYT에 “인구 변화에도 불구하고 저학력 백인이 상당 기간 미국 유권자의 최대 집단을 형성할 것”이라며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졸 이하 백인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4%에 달하고, 대졸 이상 학력의 백인 비율은 23%에 머물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이사이라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2020년부터 2036년까지 대선전에서 전체 득표수에서는 뒤지면서도 주별 선거인단 숫자에서 앞서 백악관을 연속으로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보다 전체 득표수에서 졌지만, 선거인단 숫자에서 앞서 승리했다. 미국에서는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나머지 48개 주와 워싱턴DC가 주 단위로 득표수를 계산해 그 주의 선거인단을 승자가 독식한다. 2000년 대선 당시에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 비해 전체 득표수에서 졌으나 선거인단 숫자가 많아 승리했다.

이달 초 실시된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파란불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NYT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은 작은 선거구 단위로 실시되는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패배했으나 주 단위로 뽑는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다수당을 지키면서 의석수를 늘리는 승리를 거뒀다. 주지사 숫자도 여전히 공화당이 더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한 이후 지지율이 50%를 넘어 본 적이 없지만 2020년 대선에서 저학력·저소득 백인 유권자의 압도적인 지지로 주 단위로 뽑는 선거인단 숫자에서 또 한 번 민주당 후보를 누를 가능성이 크다고 NYT가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 출신의 미국 이민 희망자 행렬인 캐러밴의 입성을 막으려고 군 병력을 동원하는 등 이민 문제를 쟁점화하는 것도 저학력·저소득 백인 유권자 결집을 노린 재선 전략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