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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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병원도 맘 편히 못 가는 나라

“흉이 거의 남지 않아 요즘 엄마들이 선호해요.”

3년 전, 병원의 설명을 듣고는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게 주저 없이 경피용 BCG 백신을 맞혔다. 성인이 되면 팔뚝의 주사 흉터가 지름 1㎝ 이상으로 커지는 피내용 백신은 국가 접종으로 무료지만, 백신을 피부에 바른 뒤 9개의 바늘이 달린 도장형 주사를 두 번 찍는 경피용은 7만원이었다. 평생 흉터를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은 가격이었다.
김희원 문화체육부 기자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피용 BCG 흉터도 피부 타입에 따라 복불복이란다. ‘불복’의 경우 주사 자국이 더 넓게, 많이 남으며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피내용은 접종하기 까다롭고 부작용 발생 확률이 높아 병원 측이 경피용을 선호한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내가 뭐에 홀려 병원 설명을 덜컥 믿었나, 흉터가 오래가는 내 피부를 닮았으면 어쩌나….’ 18개 바늘 자국이 선명한 아이의 팔을 볼 때마다 후회하고 자책했다.

그 회한의 주사에서 이번엔 1급 발암물질인 비소가 검출됐다. 정확히는 백신을 주사하기 위해 섞는 첨부용제(생리식염수)에서 나온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6년 하반기부터 수입된 경피용 BCG 백신만 회수했지만, 그 전에 유통된 백신에도 비소가 녹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신 제조사인 일본 업체가 비소 검출 원인으로 보이는 해당 첨부용제 용기를 사용한 것이 2009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소가 섞인 주사를 맞은 아이들 수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사실 비소 때문에 불안한 마음은 없다. 식약처는 1일 허용량의 38분의 1 수준이며 인체에 흡수되는 양은 더욱 적다고 밝혔다. 접종한 아기 중 구토나 설사 등 비소에 의한 부작용도 아직 보고된 바 없다. 하지만 찜찜함이 남았다. 백신 회수 소식이 전해지고 며칠 내로 사건은 너무나 신속하게 정리됐다. 정부와 일본 제조업체, 한국 수입업체 중 누구도 한국 엄마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안심해도 좋은 수준”이라는 설명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쏟아졌다. 여론도 정부의 ‘발 빠른 대처’에 대체로 만족한 듯싶다.

그런데도 맘카페에는 ‘없어야 될 게 나온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엔 부적절한 대응이다’ 등의 의견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해당 주사의 안전에 대한 의심은 덜해도 병원과 의약품 관리 시스템, 정부에 대한 불신은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수입되는 백신의 주성분만 검사하고 함께 주사되는 첨부용제는 따로 검사하지 않는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과와 대책 발표는 생략한 채 안전성만 강조하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신뢰를 주지 못한, 결과적으로 실패한 위기관리인 셈이다.

엄마들은 수년째 주사공포에 떨어왔다.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이 있었고, 수액에서 날벌레나 이물질이 발견된 경우도 여러 번이다. 이번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병원도 마음 편히 못 가는 나라’라는 좌절감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가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고 철저한 재발 방지 약속으로 믿음을 주지 않는다면, 극단적 병원 거부로 사회적 파장을 불렀던 ‘안아키’ 운동이 또다시 등장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김희원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