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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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정상회담의 격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5월 첫 미국 방문 때 미 대통령과 공식만찬을 하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5일 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에게는 공식만찬을 베풀었다. 노 대통령의 2006년 9월 방미 때는 방문등급을 놓고 양국 간 논란이 일었다. 우리 정부는 국빈방문(State Visit) 또는 공식방문(Official Visit)을 원했다. 하지만 미국은 실무방문(Working Visit)을 고수했다. 예우가 낮은 것이다.

백악관 참모들 간에는 외국 정상의 접대 방식을 두고 언쟁이 벌어진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6월 방미하면서 대통령 별장이 있는 캠프데이비드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찬을 하길 원했다. 하지만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은 트럼프의 심기를 읽고 반대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인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해 “뭐, ××. 인도야”라며 반발했다. 결국 백악관에서 밋밋한 칵테일파티에다 실무만찬(Working Dinner)을 하는 것으로 낙착됐다.

트럼프는 미국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부통령은 물론 핵심 참모들까지 식사자리에 부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 무함마드 빈 살만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프리버스 비서실장,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재러드 큐슈너 수석고문이 참석한 오찬을 대접받았다.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이 프로토콜을 위반했다며 안절부절못했다. 격식 파괴 식사대접 결과 미국은 사우디에 16조원어치 무기를 수출했다. 자말 카슈끄지 피살의 배후가 누구든 개의치 않는 것이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열린 한·미 정상 간 회동을 두고 다른 소리가 나고 있다. 청와대는 ‘공식회담’이라고 했지만 백악관은 ‘약식회담(Pull-Aside Meeting)’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양자회담(Bilateral Meeting)’에 이어 ‘실무만찬’을 했다. 형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백악관이 ‘약식회담’이라고 못 박은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절대 공짜 밥을 안 주는 곳이니.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