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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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행세 했더니… 4만원 짜리 구두 200만원에 팔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4만 원이었던 구두를 갑자기 200만 원에 판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한 미국의 신발 브랜드가 독특한 실험을 진행했다. 박리다매용으로 대량 생산한 구두를 들고 ‘명품 행세’를 한 것이다. 단 6일 동안 진행된 이 도발적인 장난은 소셜미디어 마케팅이 얼마나 허구적일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4일 미국 포브스는 경영난에 빠진 한 기업이 구사한 흥미로운 마케팅 전략을 소개했다. 미국의 신발 브랜드 ‘페이리스’는 모든 상품을 5만원 이하로 판매하는 저가 공세로 한 때 호황을 누렸지만 최근 경영악화로 큰 시름에 빠졌다. 쇼핑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시점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매출이 바닥을 친 탓이다. 지난해에만 400개가 넘는 점포의 문을 닫으며 대량 실업자를 양산한 이 기업은 연말 쇼핑 시즌을 앞두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산타모니카 명품거리에 위치한 엠포리오 아르마니 매장을 빌려 ‘명품 쇼’를 벌인 것이다. 전문 마케팅 업체를 고용한 회사는 자신들의 구두에 붙은 로고를 떼고 ‘팔레시’ 라는 가상 브랜드의 가짜 로고를 붙였다. 4만 원에 불과했던 ‘페이리스’의 구두의 몸값은 명품 매장의 럭셔리한 유리 진열대에 전시됨과 동시에 200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매장을 최고급 명품 전시장처럼 고급스럽게 꾸민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이들은 SNS를 통해 이탈리아 장인이 제작한 구두를 미국에서 선보인다며 떠들썩하게 광고했다. 팔레시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브랜드였지만 SNS에 올라온 감각적인 화보 사진과 그럴듯한 소개 문구를 접한 많은 이들은 생소한 명품의 등장에 매료됐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후엔 인스타그램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유명인들을 초대해 성대한 런칭쇼를 개최했다. 행사에 초대받은 패셔니스타들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자리에 참석해 ‘명품 구두’에 찬사를 퍼부었다. 행사 참석의 대가로 적지 않은 보수를 받았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칭찬한 이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구두를 구입한 이도 적지 않았다. 



흡족할 만한 반응을 모두 확인한 기업은 런칭쇼가 끝난 뒤 참석자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판매된 상품전부를 환불해줬다.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참석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페이리스의 CMO 사라 카우치는 팔레시의 런칭쇼 영상을 공개하며 “이 실험을 통해 높은 가격이 높은 품질을 의미하지 않으며, 저렴한 가격이 낮은 품질을 의미할 수 없음을 밝혀냈다. 그러니 더 싼 상품을 사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라는 말로 실험의 취지를 밝혔다. 



세인트 조셉 대학교애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마이클 솔로몬 교수는 페이리스가 ‘베블런 효과’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베블런 효과란,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는 것이다. 페이리스의 런칭쇼에 초대된 패셔니스타들은 생소한 명품을 남들보다 먼저 얻고자 선뜻 지갑을 열었다. 




페이리스가 계속해서 ‘명품쇼’를 이어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SNS 유명인사들이 즐겨 신는 신흥 명품 구두로 입소문을 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을지 모른다. SNS 유명인사들은 ‘인플루엔서’라고 불릴 만큼 해당 업계에서 놀라운 영향력을 자랑하지만 그들 대다수의 전문 분야는 패션도, 무엇도 아닌 ‘과시하기’다. 

이아란 기자 aranciata@segye.com
사진 = payless